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역사 (문단 편집) === 자본주의의 침투 === 원래 북한은 기본적으로 토지와 자본의 소유를 부정하고 아직도 농지의 개인적 소유는 조그마한 텃밭 정도만 허용한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합영법에 근거하여 국가의 시책에 맞는 상업/공업의 창업을 허용한다. 쉽게 말하면 국가의 계획경제 체제 하에 국가의 계획과 부합하는 사업 아이템을 누군가가 들고 나오면 그 사업을 허락한다. 그러므로 시스템도 '''국가에서 사무실을 빌려서 국가에 세를 내고 운영하는''' 식이다. 그리고 창업해도 사장이나 회장의 직함은 없고 오로지 '''직장 장''' 직함만 얻는다. 국가에서 파견한 사업체 장의 지위와 같다. 2000년대 들어 7.7 경제완화정책 등 여러 가지 경제 정책을 펴면서 '''돈주'''라 불리는 신흥 자본가들이 나오니 그들 입장에서는 이들이 새로운 사회 변화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겨울연가 비디오는 다 이들을 거쳐서 밀수한다.-- 영화 [[크로싱]]에서도 이들은 남한의 축구 경기를 보고 수입품을 쓰는 것으로 묘사된다. 사실 이 부분은 맥락에 따라 조금 다르다. 2000년대 초중반 북한은 분명 2002년 '7·1 조치' 이후 내각 화학공업 상으로 있던 [[박봉주]] 총리의 전격 발탁으로 '내각 상무 조' 하에서 나름대로 급진적인 경제 정책을 폈으나 2005년 [[장성택]] 이하 여러 북한 특사들이 남한에 와서 [[노래방]](...)을 즐겼던 시기(...)를 피크로 노동당이 없앴으며 2007년 박 총리를 해임하면서 더 얼어붙고 세습체제 안정화와 '강성대국'의 길을 걸었다. --[[툰드라]] 공화국이 [[타이가]] 잠시 했다가 도로 [[툰드라]]-- 하지만 2010년 이래로 [[CNC]] 드립과 함께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165|세계를 향하여]]' 드립이 나오면서 중국과 친해지려는 분위기가 급속히 퍼지고 [[평양]] 내의 개방은 현재진행형이다. 2010년대 들어 [[휴대전화]] 가입자 수와 [[평양]]의 [[자동차]] 수가 늘었다고 한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국가의 단속을 피해 부서가 존재하는 민영기업을 운영하는 경우까지 등장한다고 한다. 목욕탕, 결혼식장 서비스, 아파트 경비원 고용까지 있다고 한다. 이 시기를 북한에서 보낸 사람들은 끼니는 이었다고 하여 넉넉하지는 않지만 생각보다는 많이 잘 살아서 외부에서는 놀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비사회주의'라며 이를 탄압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북한/경제]], [[북한/경제/역사]] 문서를 참조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