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명 (문단 편집) == 정확한 위치? == 현재 학계에서는 [[강원도]]나 [[함경도]] 쪽으로 추정하며, [[동예]]가 있었던 지역이므로 [[예]]족의 일부로 바라본다. * [[함경남도]] [[원산시|원산만]] 일대 [[이병도]]의 《한국고대사연구》에 따르면 [* 1976년 판, 201~205p] 함경남도 원산만 일대의 강원도 [[안변군]]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곳은 [[동예]]의 중심지였으며 후에 "불이"(不而) 또는 "불내"(不耐)로 불린 장소다. 이를 근거로 남해 차차웅 기사에 등장하는 예왕의 도장은 이곳에 자칭 "예왕"(濊王)으로 부르던 지역 수장이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주장에 근거하면 원산만 일대가 신라의 영토에 편입 된것은 [[진흥왕]]때의 일이므로 남해 차차웅에 등장하는 기사는 오류가 있다라고 보게 되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북명은 [[통일신라]] 초기의 북쪽 국경이므로 기록과 아귀가 맞다. * 강원도 [[강릉시]] 반면 저 기사가 사실이고 고구려와 신라 양쪽의 팽창의 접점에 미치는 곳은 강릉이라는 주장도 있다. 예왕의 도장을 입수한 것은 신라가 예(濊)를 정벌했고, 이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주장이다.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1182708&qb=5YyX5rqf&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RcCPKU5Y7udsstT2LfCssc--022114&sid=UHkd9TwEeVAAAD--EwM|네이버 지식인]] * 북[[부여]]를 뜻하는 단어 [[신채호]]는 "북명(北溟)은 『북가시라』 즉, 북동부여의 별명으로 지금의 [[만주]] [[훈춘]] 등지에 위치"라고 《[[조선상고사]]》에 밝힌 적이 있다. 그러므로 북명이란 곳은 어느 지명을 예기하는 것보다 북쪽의 국가를 명칭하는 것일 수 있다. 《삼국지》 <위지> -부여전-에 남은 기록이 이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로 쓰기도 한다. >"지금 부여의 창고에는 옥玉으로 만든 벽,규,찬 등 여러 대를 전해오는 물건이 있어서 대대로 보물로 여기는데 노인들은 "선대先代의 왕께서 하사하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중략) 그 도장에 '''예(濊)왕의 도장'''이란 글귀가 있고 나라 가운데에 '예성'(濊城)이란 이름의 옛 성이 있으니, 아마도 본래는 예맥의 땅이었는데, 부여가 그 가운데서 왕이 되었으므로 자기들 스스로 '망명해 온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하다." >---- >《[[정사 삼국지|삼국지]]》 <위지> -부여전- 이 기록을 근거로 일본 사학자 쿠리하라 토모노부(栗原 朋信)는 예 군장 남려에게 한나라에 내린 인장으로 보았지만 증거는 없다.[* 국사편찬위원회 《중국정사조선전》 《삼국지》 <위지> -부여전- 주석 28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