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마케도니아/역사 (문단 편집) == 현대 == 티토는 이 지역을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으로 연방구성체의 일원으로 끼워주고 마케도니아어도 독자적 언어로 인정했는데, 여기에는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에 대한 견제구의 의미가 있었다. 이런 의도를 모를 리도 없고,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니 이들 나라는 '마케도니아'라는 명칭이 이름도용이고 티토스탄(Titostan)이라고 부르며 마구 까고 있다. 이런 관계로 인해 [[소련]]은 자기말 안 듣는 티토를 견제할 때 한 번씩 [[불가리아]]를 시켜 북마케도니아의 종주권 드립을 치게 했다고 한다. 별탈 없이 유고 연방의 구성국으로 조용히 살아오다가, [[1991년]] [[6월 25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서막이 오른다. 마케도니아 공화국도 다른 공화국들의 독립에 자극받아 같은 해 9월 8일 독립을 선언했지만, 분리독립 이후 내부 민족 간 분란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 같은 다른 구유고권 국가들과 달리 현지의 인구 구성비에서 세르비아인의 비중이 적었고, 당시 세르비아에서도 크로아티아의 분리독립 저지에 힘을 쏟느라 여기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어, 독립 이후에 세르비아와의 전쟁이나 자국 영내에서 거주하는 세르비아인들의 반발[* 사실 크로아티아 전쟁과 보스니아 전쟁 당시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지역에서 살던 세르비아계 세력들이 분리독립에 반대하며 크로아티아인 중심의 크로아티아 정부와 보슈냐크인 중심의 보스니아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게 된 배경에는 이 지역에서 살던 세르비아계 집단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지원을 받던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와 보스니아의 한트샤르에 의해 대량 학살당하는 등 해당 지역이 유고 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 되면 다시금 제2차 대전때처럼 자신들을 죽이거나 쫓아낼거라는 피해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주요한 원인이었다.]과 저항으로 촉발되었던 민족 간 내전을 피하고 비교적 평화롭게 독립할 수 있었다.[* 다만 이와 별개로 마케도니아 독립 전,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에서 복무하다 슬로베니아나 크로아티아에 파견된 마케도니아인 54명이 전사하였으며 나머지 마케도니아인들도 마케도니아 독립 후 고생하며 전쟁터에서 빠져나와 귀국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독립 이후 동부 지역에 거주하던 남슬라브 계열의 마케도니아인들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이슬람교를 믿는 서부의 알바니아계들을 홀대,배척하면서 민족/지역 간 갈등이 증폭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999년 [[코소보 전쟁]]이 벌어지면서 [[코소보]]에서 살던 알바니아계 난민들이 대거 마케도니아로 피난을 왔는데, [[2001년]]에 [[알바니아]]의 지원을 받은 코소보 해방군이 36만 명의 코소보 알바니아계 난민[* [[코소보]] 인구의 20%에 달한다.]들이 거주하는 마케도니아의 영토[* 당시 북마케도니아는 난민을 수용/통제할 능력이 없었기에 북마케도니아 북부 [[코소보]] 접경지 일대에 알바니아인 난민들을 받아주되 방치하였다. 마케도니아로 간 난민들은 마케도니아가 난민으로 온 자신들을 '''대접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자신들이 거주하는 코소보 접경지를 [[코소보]]한테 들어 바치거나 독립할 생각을 했다.]를 삼키고 대 알바니아주의 사상을 실현할 생각으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알바니아 공국]] 땅이라는 점을 명분으로 했다.] 내분을 선동하면서 여기에 고무된 마케도니아의 알바니아인들과 마케도니아 정부 사이에 내전이[* [[위키백과]]에는 [[2001년]] 마케도니아 반란이라고 돼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2001_insurgency_in_Macedonia|항목]]] 발발하였다. 하지만 마케도니아는 당시 군사력이 워낙 약해서 [[NATO]]와 이웃나라인 [[불가리아]]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NATO를 이끄는 [[조지 워커 부시]] [[미국 대통령]]과 당시 불가리아의 총리였던 [[시메온 2세]][* 불가리아의 전 국왕이던 그 사람이 맞다.]가 이를 받아들여 많은 양의 무기와 병장기들을 지원하여 반란 세력을 모두 제압하였고, 마케도니아에 있는 코소보 난민 36만 명 중 대부분(25만 명)을 알바니아로 보내고 마케도니아 정부 측에서 알바니아계 마케도니아인에 대한 처우 개선과 시민/자치권 부여를 약속함으로써 내전은 막을 내렸다. 여하튼 이 일 때문에 북마케도니아는 알바니아와 몹시 사이가 안좋다. 이렇게 독립해나간 신생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국제사회에 이름을 알린 것은 유명한 그리스와의 국명 분쟁, 즉 마케도니아의 나라 이름에 관한 양국의 다툼이다. 현 그리스의 북부가 마케도니아 남부이고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을 자국사로 인식하는데 이 나라가 독립하고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분쟁이 생긴 것이다. 때문에 북마케도니아는 한동안 국제사회에서 '''구 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 공화국'''(FYROM, Поранешна Југословенска Република Македонија)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했다.[* 북마케도니아 쪽도 딱히 피해자라고만 할 수는 없는게, 수도의 스코페 국제공항[[https://en.wikipedia.org/wiki/Skopje_International_Airport|#]]에 고대 마케도니아의 영웅인 "알렉산더 대왕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을 떡하니 박아놓았다. (2018년 폐지.) 그러니 그리스에서 보는 시각이 좋을 수가 없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그리스-마케도니아 분쟁]]을 참고. 분쟁 끝에 2017년 8월 31일에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공화국 양국은 관계개선에 합의했다.[[http://v.media.daum.net/v/20170901181346362|#]] 2018년 1월 7일에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자에프 총리는 상반기내에 그리스와 해법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421&aid=0003137952|#]] 2016년 12월 27일. 총선 결과 거의 동률 수준의 2석 차이로 보수당이 이겼지만 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2/27/0200000000AKR20161227001500109.HTML?input=1195m|#]] 그리고 12월 총선이후에도 혼란은 일어나고 있고 야당 측이 알바니아어를 제2공식어로 지정할 움직임을 보이자 대통령이 거부를 보였고, 거기에다 야당의원에 불만을 품은 시위대가 의회를 점거하고 의원들을 폭행하는 사태가 발생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9229418|#]] 그러다가 6개월만에 중도좌파 새정부가 구성되고 EU와 나토가입을 재추진하기로 결정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9309385|#]] 결국 2018년 6월, [[https://www.wikitribune.com/article/74970|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변경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아무래도 서로 원래 입장에서 한 발짝 양보하는 형태다 보니 이 나라와 그리스 모두 이 합의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8년 10월, 투표가 열렸지만 반대파들의 보이콧으로 겨우 37% 투표에 그쳐 버렸다. 이러니 찬성 측이 91%라는 압도적인 수치로 북마케도니아 공화국 이름을 지지했지만 과반수도 안되는 투표율이라 부결해야 한다는 반대파 태도도 완강하다. 그럼에도, 집권 사민당 정부와 찬성파는 이번 투표 결과를 토대로 의회 비준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비준 강행도 무척 회의적이었던 게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반대파가 나오는 판국이기 때문. 2019년 1월 25일, 그리스 의회가 마케도니아 공화국과 체결한 마케도니아 국호 변경 합의가 통과되면서 국명이 '북마케도니아'로 공식 변경되었다. [[http://www.amna.gr/en/article/328428/Prespes-Agreement-ratified-by-the-Greek-parliament|그리스 관영매체]] [[https://mia.mk/2019/01/greek-parliament-to-vote-on-name-change-deal-with-macedonia|북마케도니아 관영매체]] 국명 문제가 해결되자 [[북대서양 조약 기구]] 가입을 신청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0618300|#]] [[https://en.wikipedia.org/wiki/Accession_of_Macedonia_to_NATO|#]] 가입 절차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인 2월 12일 정부 청사에 NATO 기를 재빠르게 게양했다.[[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9057424|#]] 국정농단사태로 인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워졌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1017597|#]] EU 가입이 좌절되자 조기 총선도 검토 중이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154566|#]] 2020년 1월 3일, 조란 자에프(Зоран Заев) 총리가 사임했으며 중립 내각이 당분간 정부를 이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314403?sid=10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