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극 (문단 편집) == 북극 탐험 == 17세기부터 [[러시아]]를 선두로 한 여러 유럽 국가들이 북극해를 지나 아시아로 빠지는 항로(일명 북극해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북극 탐험을 시작했다. 이 부분의 자세한 내용은 [[북극항로|북극 항로]] 문서 참조. 북서 항로(유럽에서 출발해서 캐나다 쪽을 돌아 베링 해협으로 빠지는 경로), 북동 항로(마찬가지로 러시아 쪽을 돌아 베링 해협으로 빠지는 경로) 모두 탐험이 시도되었으나 많은 인명 피해를 냈고, 북서 항로는 19세기가 되어서야 겨우 발견에 성공했으나, 결국 북극해의 날씨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현대에도 GPS를 써서도 지금까지 7번만 성공했는데, 21세기 들어 [[지구 온난화]]로 인해서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여담으로 [[대항해시대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고증에 맞지 않게 북극 항로를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항해시대 2]]에서는 무려 16세기에 한강 유람선 수준의 범선으로 잘만 돌아다닌다. [[대항해시대 3]]에서는 북위 75도를 넘으면 선원들이 사망해서 일단은 불가능하지만 억지로는 가능하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Gran Atlas 패치로 북극 항로가 추가되었다.] 19세기 중반에 영국 해군 소속 [[존 프랭클린]]의 탐험대는 북서 항로를 찾으러 북극해를 탐험하다가 유빙에 갇혀 조난당했고, 식인까지 이를 정도의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린 끝에 모든 탐험대원이 사망했다. 프랭클린 탐험대는 아무도 생환하지 못하면서 후대의 탐험가들에게 직접적인 기여를 해주지는 못했지만,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출발한 후속 탐험대들이 가져온 자료들이 북극해의 탐사에 큰 공헌을 했다. 북동 항로는 러시아 연안을 따라가면 되기 때문에 북서항로보다는 쉬워서 18세기에 베링이 몇 년에 걸쳐서 겨우 성공하였고, 베링이 북동항로를 따라서 가다가 발견한 곳은 그의 이름을 따서 [[베링 해협]]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 해에 걸쳐 나누어 전진했다는 한계가 있었고, 한 시즌 만에 통과하는 것은 20세기 소련 시절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파일:북극 항로.gif]]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21세기]] 들어서 [[북극해]]의 얼음이 녹으면서 다시금 전통적인 남방항로를 대체해 [[베링 해협]]과 북극해를 통과하는 [[북극항로|북극 항로]]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부산]]항에서 출발해 [[말라카 해협]]과 [[수에즈 운하]]를 거쳐서 [[유럽]]까지 가는 것보다 크게 거리 단축이 가능하며(약 3,000해리 / 경로의 29% 단축 가능) 이 쪽은 남방 항로에 창궐하고 있는 [[해적]]의 위험도 사실상 없다. 이미 여름 한 철에 한해 [[쇄빙선]] 없이 북극 항로 항해에 성공한 사례가 나온 상황이다. 지리적으로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동북아시아]]의 [[한중일]]이 특히 주목하는 중이다. 물론 북극해에 정복하러 갈 곳이 북극 항로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북극점을 정복하기 위한 시도도 여러 번 있었는데, 19세기 말에 노르웨이의 [[프리드쇼프 난센]]은 북극점을 도달하지 못했으나, 비행기로 북극을 횡단하였다. 1908년에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는 도보로 북극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했으나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고 북극점에 40km이 못 미치는 곳까지 갔다왔다는 설이 유력해지면서 그의 업적은 논란 속에 거의 무마되었다. 한편 남극점에 최초로 도달한 탐험가로 유명한 [[로알 아문센]]은 원래 북극점을 목표로 했으나, 피어리가 북극점을 정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직 아무도 탐험하지 못한 남극으로 방향을 돌려 1911년에 남극점을 정복했다. 하지만 피어리의 주장이 논란 속에 묻힌 후 다시 아문센이 북극점 비행을 계획하였지만 출발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리차드 버드라는 탐험가가 북극점 상공 비행에 성공했다고 주장. 버드의 업적은 자신이 남긴 여행 기록으로 인해 당시 인정이 되었으나 현재 너무 짧았던 비행시간과 버드가 기록에 남겼듯이 뒷바람이 불어서 북극점 도달을 지체했다는 점, 그리고 여행 기록에 위치 계산 기록이 인위적으로 지워져있는 점 등이 고려되면서 그의 성공여부는 논란이 된 상태이다. 아문센은 그 후 1926년 5월 12일에 북극점 상공 비행에 성공하였고 아직도 누가 북극점 상공에 먼저 도달하였는지는 관심 있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만년 키배 떡밥이다. 현재로는 아문센이 최초로 도달하였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고 한다. 최초로 북극점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소련의 알렉산드르 쿠즈네쪼프(Alexander Kuznetsov)가 이끄는 탐험대로 1948년 북극점 근처에 착륙하여 북극점 위에 발을 올렸다. 어쨌든, 그 누군가가 북극점에 비행기로 최초로 도달한 이후 사람들은 최초로 비행기 외 수단을 통해 북극점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미국인 랄프 플라이스티드(Ralph Plaisted)가 1968년 최초로 스노우 모빌을 사용해 북극점에 도착하였으며 1969년 영국 탐험가 월리 하버트(Wally Herbert)가 오직 개썰매만을 이용해 최초로 아무런 기계 장비 없이 북극점에 도달한 사람이 되었다. 1995년에는 아예 캐나다의 리차드 웨버(Richard Weber)와 러시아의 미샤 말라코브(Misha Malakhov)가 오직 발에 스키만을 착용한 채 외부의 물자 지원은 물론이고 심지어 개썰매도 없이 걷기만으로 북극점 도달에 성공했으며 2007년에는 기행의 나라 영국에서도 제일 특이한 TV쇼로 알려진 [[탑기어]]에서 [[마개조]]한 [[토요타]]의 픽업트럭 하이럭스로 북극점에 도달했다.[* 단 여기서는 1996년에 자북극이었던 지점에 도달했다.] 이쯤 되면 인류는 현재 가능한 방법 중 대다수의 방법을 다 사용하여 북극점에 도달한 듯. 2008년 1월 10일, 러시아가 특수 잠수함으로 북극점 심해 바닥에 도달하는 프로젝트 아티카 2007을 성공시키면서 세계 최초로 북극점 심해 도달에 성공했다. 티타늄으로 만든 러시아 국기까지 꽂고 왔다고. 북극의 소유권을 두고 여러 나라의 신경전이 쟁쟁한 가운데 각국 여론에서 이를 떡밥으로 물어서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가 북극점의 영토권을 주장하기 위해 북극점 심해에 러시아 국기를 꽂은 것이라 몰면서 논란을 일으켰으나 러시아 측에서 그냥 러시아의 대륙붕이 북극까지 이어져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였을 뿐이라며 논란을 무마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