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상국 (문단 편집) == 기타 == 신라나 백제, 일본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제3의 지역으로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7세기경 편찬된 [[양서]](梁書) 54권 「제이전(諸夷傳)」[* [[남사]](南史) 권79 열전 제69 이맥]에는 백제, 신라, 왜와는 구별되는 부상국(扶桑國)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기술해놓았다. >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k_0014_0079_0050_0010|동북아역사넷 번역]] > 부상국(扶桑國)의 풍속 > > 부상국(扶桑國)은 [[남제|제(齊)]] 영원(永元) 원년(499), 그 나라의 승려 혜심(慧深)이 [[형주]](荊州)에 와서 말하기를, “부상국은 대한국(大漢國)[* 대한국(大漢國)은 문신국의 동쪽 오천여 리에 있다. 병장기가 없으며, 공격하거나 싸우지 않는다. 풍속은 모두 문신국과 같으나 말이 다르다.[[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k_0008_0054_0170_0010|#]]][* 문신국(文身國)은 [[왜국]](倭國)의 동북쪽 7천여 리에 있다. 사람들의 몸에 무늬가 있는데 마치 짐승 같고, 그 이마에 세 개의 무늬가 있는데 무늬가 곧으면 존귀한 사람이고 무늬가 작고 굽었으면 비천한 사람이다. 그 땅의 사람들은 쾌활하여 즐겁게 산다. 물산이 풍부하고 값이 싸서, 나그네들은 식량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가옥은 있으나 성곽은 없다. 그 왕이 거처하는 곳은 금과 은 진귀한 보석으로 아름답게 꾸몄다. 가옥을 빙 둘러 구덩이를 파는데, 그 넓이가 한 길(丈)이며 수은으로 채워, 비가 내리면 빗물이 수은 위로 흐른다. 거래에는 진보(珍寶)를 화폐로 사용한다. 가벼운 죄를 지은 자는 채찍이나 곤장으로 때리고 말지만, 죽을 죄를 지으면 맹수와 함께 두어 잡아먹게 한다. 그런데 처벌이 잘못되었으면 맹수가 피하여 먹지 않는데, 하룻밤을 무사히 지내면 풀어준다[[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k_0008_0054_0160_0010|#]]][* 즉, 부상국은 [[왜국]]에서 동북쪽으로 7천+5천+2만=3만 2천리 떨어진 지역에 있는데 양서의 제이전의 다른 기록을 보면, [[황해도]]의 [[대방]](帶方)에서 [[왜국]]까지의 거리가 1만2천여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된 점을 고려하였을때, 왜국에서 3만 2천리 떨어진 지역을 추산해보면 거의 [[사할린]]이나 [[캄차카 반도]]에 부상국 위치가 잡힌다]에서 동쪽으로 2만 여 리 떨어진 곳으로, 중국의 동쪽에 있습니다. 그 땅에는 부상목이 많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삼았습니다. 부상의 잎사귀는 오동나무와 비슷하고 처음 솟아날 때에는 죽순과 같아서 국인들이 그것을 먹습니다. 열매는 배와 같으나 붉으며 나무껍질을 벗겨 길쌈해서 포를 만들 수 있으며 또한 비단[錦]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널빤지로 만든 집을 짓고 살지만 성곽은 없습니다. 문자가 있고 부상 나무껍질로 종이를 만듭니다. 군대가 없어 남을 공격하거나 싸우지 않습니다. 나라 법에 남북으로 감옥이 있어 죄를 지으면 가벼운 죄를 지은 자는 남옥(南獄)에 들어가고 무거운 죄를 지은 자는 북옥에 들어갑니다. 사면이 있으면 남옥을 개방하지만 북옥(北獄)은 방면하지 않습니다. 북옥에 있는 자들 중 남녀가 서로 짝을 맺어 아들을 낳아 8세가 되면 노로 삼고 딸을 나아 9세가 되면 비로 삼습니다. 죄를 지은 본인은 죽을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못합니다. 귀인이 죄를 지으면 국인들은 대회를 열어 죄인을 구덩이에 앉히고 마치 사별할 때와 같이 그에게 연회를 베풀며 이별을 고합니다. 횟가루로 그의 주위를 빙 둘러치는데, 한번 두르면 그 자신만 물러나고 두 번 두르면 자손에까지 미치며 세 번 두르면 7대까지 미칩니다. 국왕을 을기(乙祁)라고 부릅니다. 귀인 중 제1인자는 대로(對盧)라고 하고 제2인자는 소대로(小對盧)라고 하며 제3인자는 납돌사(納咄沙)라고 합니다. 국왕이 행차할 때에는 북과 뿔피리로 인도하며 그 뒤를 따릅니다. 옷의 색깔은 해마다 바꾸는데, 갑을(甲乙)년에는 청색, 병정(丙丁)년에는 적색, 무기(戊己)년에는 황색, 경신(庚辛)년에는 백색, 임계(壬癸)년에는 흑색으로 바꿔 입습니다. 뿔이 매우 긴 소가 있어 그 뿔로 물건을 실을 수 있는데, 20곡(斛) 이상의 물건을 실을 수 있습니다. 또 마차, 우차, 녹차(鹿車)가 있습니다. 국인들은 사슴을 키우는데 중국에서 소를 기르는 것과 같으며 그 젖으로 타락을 만듭니다. 붉은 배[赤梨]가 나는데, 1년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포도가 많이 납니다. 그 땅에는 철은 나지 않되 동은 있으며 금은을 귀히 여기지 않습니다. 시장에는 세금이 없습니다. 혼인법에는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가서 문밖에 집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쓸고 닦는데, 1년이 지나서도 여자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쫓아내고 서로 마음에 들어 하면 혼인이 성립됩니다. 결혼식은 대체로 중국과 같습니다. 친부모 상을 당했을 때에는 7일 동안 먹지 않으며 조부모 상을 당했을 때에는 5일 동안 먹지 않고 형제와 백숙, 시어머니와 [[누이]]와 [[여동생]]의 상을 당했을 때에는 3일 동안 먹지 않습니다. 자리를 마련하여 신상(神像)을 두고 아침 저녁으로 절하며 받들되 최질(衰絰) 의 상복을 만들어 입지는 않습니다. 왕이 뒤를 이어 즉위하면 3년 동안은 직접 국사를 주관하지 않습니다. 이 나라 풍속에는 원래 불법(佛法)이 없었습니다. [[유송|송(宋)]] 대명(大明) 2년(458)에 계빈국(罽賓國)에서 일찍이 비구 5인이 부상국을 다니러 왔다가 불교 경전과 불상을 전해주고 출가하는 법을 가르쳐주니 마침내 풍속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상국이 실제로 어디에 있었는지는 불명이나, 학자에 따라서는 그리고 해당 기록에 따르면 부상국은 최고위 관직명을 대로(對盧)라는 부르고 있는데 이게 우연하게도 [[고구려]]12관등(官等) 중의 최고 관직명인 대대로(大對盧)와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부상국을 고구려의 관직체계가 사용되는 고구려의 속국이나 계승국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런 가설을 연계한 학자들 중 일부는 '''[[사이비 역사]]로 [[아메리카]] 대륙의 [[미국]] 서해안 및 [[멕시코]]''' 일대라고 추정하는 설까지 있다. 이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아즈텍 제국]]이 [[고구려]]의 후손'''(...)으로 구성된 집단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배재대학교]] 손성태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는 [[양서]]의 부상국 기록 등을 토대로 고구려-아즈텍 친연 가설을 주장하였고 국영방송 [[KBS]]는 해당 가설을 토대로 <멕시코 한류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2017년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도 하였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www&mode=view&art_id=201702071026361&dept=115|‘고구려-아즈텍 친연 가설’ KBS 다큐 왜곡 논란(2017.2.14. 주간경향)]] 다만 주류 사학계에선 양서에 기록된 부상국이 실제 나라가 아닌 당대의 여러 상상과 설화를 조합하여 만들어진 허구로 추정하기도 하며 안정준 서울시립대 교수는 양서에서 '부상국'을 언급한 혜심(慧深)이란 승려가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토대로 사기극을 벌인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 시기는 중국이 남북조시대로 갈라진 상태였으며 북조와 남조는 서로의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해 주변국들이 조공책봉을 하러 오면 답례로 몇배나 되는 화사품을 선사하며 자신들의 나라에 먼저 조공책봉하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또한 양서 제이전에 묘사되는 부상국과 그 주변국들의 풍속(문화)은 제이전에 기록된 당대 다른 국가들의 풍속과 비교해도 [[괴력난신|지나치게 작위적이고 괴이한 묘사]]들이 많은 점 또한 신뢰성을 깎아먹고 내용이 거짓일 가능성을 높이는 원인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