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산광역시/스포츠/역사 (문단 편집) === 2000년~2003년: 1차 암흑기 ===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로얄즈의 모기업인 대우가 파산하자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되었고, 여기부터 부산 축구의 암흑기가 시작된다. 프로야구 롯데는 2000년 4월 18일 포수 [[임수혁]]이 경기 도중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고 [[8888577|7년간의 대암흑기]] 이전의 마지막 가을야구였던 [[KBO 준플레이오프/2000년|준PO]]에서도[* 부산 연고팀의 가을야구 시리즈였으나 하필 이 기간 중 부산에서 [[전국체육대회]]가 열리는 바람에 [[마산 야구장]]으로 경기 장소를 옮겼다.] 삼성에게 패하며 5위로 시즌을 마쳤다. 한편 앞에서 말했던 대우 로얄즈가 모기업의 도산 후 부산 아이파크로 바뀌면서 무너지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홈 구장인 [[구덕운동장]]이 보수 공사에 들어가 대구, 창원 등에서 유랑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였고, 관중 수도 부산 대우 로얄즈의 마지막 시즌에 비해 60% 급감하였다. 기아자동차 역시 [[1997년 외환 위기]]를 피하지 못했고 성적까지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2000-2001 시즌이 부산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으며, [[울산광역시|울산]]으로 [[연고지 이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1년, 롯데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던 찰나에 [[김명성(1946)|김명성]] 감독이 7월 24일에 급사하는 일이 터졌고, 시즌 후반 [[펠릭스 호세]]의 [[배영수]] 폭행 사건까지 터지면서[* 알다시피 호세가 이 사건으로 1군에서 말소되고, 그를 대신해서 1군에 올라온 선수가 바로 '''[[이대호]]'''다.] 4위와 단 2게임 차로 불운하게 꼴찌를 하게 된다. 리모델링을 마친 구덕운동장에 복귀한 아이파크는 좋은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한 끝이 모자라 리그컵 준우승, 리그 4위, FA컵 8강에 그친다. 그리고 이 해 [[송종국]]이 신인상을 받게 되는데, 이는 '''2021년 지금까지 부산 연고 구단이 수상한 마지막 신인상 사례다.'''[* 그나마 부산 구단이 신인상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가까웠던 해들을 짚어보면, 2006년의 [[나승현]], 2013-14 시즌의 [[이재도]], 2017-18 시즌의 [[허훈(농구)|허훈]]과 [[양홍석]], 그리고 2021년의 [[최준용(농구선수)|최준용]] 이렇게 4명 뿐이었다. 그마저도 나승현은 2006 시즌에 [[류현진]]이 압도적인 성적을 찍어버려서 신인왕을 못 타기는 했지만 이 데뷔 시즌이 본인의 커리어 하이가 되어 버렸고, 이재도는 17-18 시즌 안양 KGC로 트레이드 되면서 팔려갔다가 kt가 사라진 현재는 그나마 부산 농구팬들이 많이 이적한 창원으로 갔고, 허-양 듀오는 후술하겠지만 당시 kt의 성적이 2년간 매우 처참했기에 SK 안영준에게 신인상을 빼앗겼다. 최준용은 [[이의리]]에게 소화 이닝에서 밀리면서 아깝게 수상에 실패했다.] 2002년 롯데는 최악의 한 해를 보내게 된다. [[롯데 자이언츠/2002년|이 시즌]] 중반 16연패를 당하면서 [[우용득]] 감독이 해임되고, '''[[백인천]]'''이 취임하며 문자 그대로 팀이 박살나기에 이르렀으며 당시 97패를 기록하면서 '''[[KBO 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패 기록에 단 1패를 남긴 채''' 제대로 망가졌다. 아이파크 역시 10개 팀 중 9위를 기록하는 심각한 부진 끝에 힘든 한 해를 보내야 했다. 그나마 [[히딩크호/폴란드전|대한민국의 월드컵 사상 첫 승리]]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따 내고, 이 해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을 개최한 것이 유일한 소득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대구광역시|대구]]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동양 오리온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모두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2002년을 자신들의 해로 만든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2003년, 롯데는 여전히 개막전 1무 12패를 포함하여 땅속으로 파고들게 되었고, 7월 중순에 12연패를 당한 것이 결정타가 된 끝에 백인천 감독은 끝내 8월에 해임되었다. 여기에 리그 최종전 [[이승엽]]의 당시 아시아 신기록이었던 시즌 56호 홈런을 [[이정민(야구선수)|이정민]]이 내주며[* 정작 이날 경기는 이겼으며 이정민은 그 날 데뷔 처음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아쉬움을 남겼다. 아이파크 역시 이 해 리그 내 실점 2위인 71골을 허용하며 리그를 9위로 마감하는 등 부진이 이어졌다. 그나마 이 해 후반기 여수에서 옮겨온 코리아텐더가 부산 KTF 매직윙스로 이름을 바꾸며 3년 만에 농구가 부산에 돌아오게 되었다. 하지만 코리아텐더 역시 재정이 여유 있는 팀은 아니었고, 전력의 한계로 인해 첫 시즌(03-04 시즌)을 8위로 마감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