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르주아 (문단 편집) == 용어의 어원 == 부르주아라는 말 자체는 중세 (전)성기인 11세기부터 등장한다. 옛 프랑크어인 burg(부르그)[* 이 단어는 각각 영어에서는 burh를 거쳐 borough, 독일어에서는 burg, 프랑스어에서는 bourg, 이탈리아어에서는 burgo가 되었다.]는 군읍 및 성읍(town)을 뜻했는데, 11세기부터는 농업 및 상업적 성장에 힘입은 군읍들이 자체적으로 성벽을 쌓거나, [[성(건축)|성]] 주변에 이곳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자연형성되어 영주가 이를 보호하고 세금을 걷고자 새로이 성벽을 쌓으면서 중세도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 특히 상공인 계층을 프랑스어로 bourgeoisie라 불렀다. 물론 이때의 부르주아지는 엄밀히 말하면 '시민'(citizen)이 아니라 '도시인' 혹은 '성민'(burgher)이라 불러야 한다.[* 통념과는 달리, 이들 도시민은 대부분 농노출신으로서 도시에 정착하여 신분상승을 이룬 존재들이었다. 초기에는 원래 예속되어있던 영주한테 대금을 치르거나 전통적인 도시영주인 주교한테 의탁하여 장원공동체를 벗어나 도시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는데, 외혼세와 인두세, 상속세로 대표되는 인신상의 예속은 그 대상이 장원영주에서 주교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존재하였다. 이는 도시의 발전과 함께 전개된 [[코뮌]] 운동으로 도시 자치가 이루어지면서 차츰 폐지되었다.] 근대적 개념으로서 '시민'의 기원은 중세도시가 발전한 이래 근대까지 이곳에 사는 사람들, 즉 자연 인구증가, 해방농노의 후손, 타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 도시 근교에서 사는 사람 등을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제창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 ~~그리고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의 설명~~ 탓에 성벽 안에 사는 사람들이 특별히 더 부유하거나 부유한 사람의 상징이라고 착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중세~근세 동안에는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부유한 경우는 드물었다. 대상인이거나 길드에서 마스터(장인)를 맡는 소수나 부유했지,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그냥 돈 없는 학생, 소상인, 장인 휘하의 직원, 시 정부나 도시영주(주로 주교)한테 고용된 관리, '''그냥 농부'''[* 고대 말 정치적 혼란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중세를 맞이한 고대도시부터 19세기 초 근대도시까지도, 유럽의 도시는 거주 지역 너머 크게 성벽을 둘러서 밭이나 가축을 기를 목초지까지 보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런 곳은 말이 도시지 조금 클 뿐 평범한 농촌과 별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물론 도시 농민은 대체로 자영농이라서 장원 농노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거렁뱅이(...) 등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