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라이다 (문단 편집) === 알 아부 알리얀 === 부라이다는 1577년 알 카심 토후국의 중심지로 세워졌다. 그 왕가인 타밈 부족의 알 아부 알리얀 가문은 18세기 들어 다리비, 하사니 계열로 나뉘어 내분을 벌였다. 1740년에는 모스크에서 8명의 가문원이 살해되는 참극이 있었다. 1760년대에는 [[베두인]]들의 침공에서 도시를 보호하기 위한 성벽이 둘러졌다. 1770년 부라이다는 1차 사우디 국가 (디리야 토후국)의 군주 압둘아지즈 빈 무함마드의 아들 사우드에게 점령되었다. 다만 사우디에 복속한 후에도 하사니 계열 내에서 동족 상잔을 벌이다가 1780년 후자일란 빈 하마드의 즉위로 안정되었다. 그러던 1782년 카심 지역에선 반와하비 봉기가 일어났고, 알 하마드 부족은 부라이다의 경쟁 도시던 앗샤마스 및 다리비 세력과 함께 부라이다를 포위하였다. 장기간의 포위를 이겨낸 부라이다 주민들은 앗샤마스를 파괴하여 보복하였다. 그후로도 부라이다의 혼란은 이어졌다. 1786년 이라크 남부 문타피크 후국의 아미르 투와이니 빈 압둘라 알 샤비브가 동북쪽 50km 지점의 앗타누마를 습격한 후 부라이다를 포위하했지만 역시 함락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다만 와하비 전쟁 중인 1817년 이브라힘 파샤의 이집트 군은 신식 무기를 앞세워 부라이다를 포위한 끝에 아미르 후자일란의 항복을 받아내었고, 도시의 안전을 대가로 스스로 인질이 되어 이브라힘 파샤와 함께 떠난 후자일란은 이듬해 [[메디나]]에서 사망하였다. 사후 아들 압둘라가 계승했으나 곧 암살되어 친척 라쉬드가 즉위했는데, 그 역시 압둘라의 모친인 룰와 빈트 압둘라흐만이 궁전의 화약고를 터뜨려 궁과 함께 폭사시켰다. 뒤이어 즉위한 압둘라 빈 무함마드 역시 1820년 튀르크 장교 후세인 베이에게 살해되었다. 그후로 가문 내부의 골육상쟁이 이어진 끝에 형의 죽음을 복수한 무함마드 빈 알리 알아르파즈가 즉위하였다. 하지만 1827년 2차 사우디 국가 ([[네지드 토후국]])의 투르키 빈 압둘라는 그를 폐위하고 알주프 ([[두마툴잔달]]) 총독으로 봉하였는데, 역시 얼마후 해임되어 1842년 자신이 죽인 전 아미르의 아들에게 살해되었다. 한편 투르키에 의해 봉해진 압둘아지즈 빈 무함마드는 34년간 장기 집권하며 안정을 가져왔다. 1858년 약화된 네지드 왕국에 반기를 들었다가 오랜만에 다리비계 아미르가 봉해졌으나 결국 압둘아지즈가 복위하였다. 이에 네지드의 파이살 빈 투르키는 압둘아지즈의 경쟁자인 무함마드 알가넴에게 우나이자 주민들과 함께 부라이다를 공격하게 하였고, 1861년 압둘아지즈는 살해되었다. 2년 후 파이살은 방계 왕족을 봉했다가 같은해 폐위하며 아부 알 알리얀 왕조는 멸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