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복녕군 (문단 편집) == 가족과 후손 ==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장남 양원군 이환[* 양원군이 소현세자의 둘째 아들인 경완군 이석린의 양자로 출계했다는 가짜 뉴스가 [[https://ko.wikipedia.org/wiki/%EC%96%91%EC%9B%90%EA%B5%B0_(1658%EB%85%84)|위키백과 해당 문서]]에 수년간 존재했었다. 이석린의 대를 이은 자는 양원군이 아니고, 1872년(고종 9년) 12월에 학생 이의저([[성종(조선)|성종]]의 14남 [[영산군]]의 7대손)를 임녕군으로 봉하면서 이석린의 양자로 지명하였다.]에게는 아들 여흥군 이해, 손자 이정석이 있었지만 여흥군이 죄를 짓고 주살당하는 바람에 대가 끊겼고, 수백 년 뒤인 1864년(고종 1년)에 이병연이 이정석의 양자로 처리되었다. 차남 [[의원군]]은 [[인평대군]] 봉사손 지위를 물려받았다. 의원군의 현손 [[남연군|이채중]]은 [[정조(조선)|정조]]의 이복동생 [[은신군]]의 [[양자(가족)|양자]]로 입적해 남연군으로 봉해졌다. 남연군의 4남이 [[흥선대원군]], 그 막내아들이 [[고종(대한제국)|고종]]이다. '''즉, 조선 최후의 왕통은 복녕군의 후손으로 이어진다.''' 1녀는 [[명성왕후]]의 남동생인 김석달과 혼인했는데, 자녀가 없어 김도협을 [[양자(가족)|양자]]로 들였다.[* 친부는 명성왕후의 오빠인 김석연이다.][* 이렇게되면 복녕군과 명성왕후는 사촌형수인 동시에 사돈이 된다.] 김도협의 딸은 [[박문수]]의 첫째 부인이다. [[http://sillok.history.go.kr/id/ksa_13807008_002|《숙종실록》 1712년 7월 8일 자 기사]]를 보면 [[유혁연]]의 외손이 복녕군의 [[사위]]라고 했다. [각주]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인평대군, version=278, paragraph=6, title2=안흥군, version2=2, paragraph2=4)] [[분류:조선의 왕족]][[분류:조선의 왕자군]][[분류:1639년 출생]][[분류:1670년 사망]][[분류:전주 이씨 인평대군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