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복고회은 (문단 편집) === 복고회은의 난 === 764년 1월 말, 복고회은은 결국 반란을 일으킨다. 자신과 그 아들, 복고창이 이끄는 삭방군을 움직여 태원을 공격한 것. 그러나 신운경은 진작부터 복고회은에 대비하고 있었고 시작부터 패배를 맛본다. 거기에 당 조정에서 1월 20일 곽자의에게 관내·하동 부원수·하중절도사직을 충임해 진압을 명하면서 말 그대로 순식간에 그 세가 약화된다. 곽자의의 복귀 소식을 들은 삭방군의 병사들은 "무슨 면목으로 분양왕(곽자의)을 볼 것인가."고 말하며 사기가 추락하고 대규모 이탈자가 생겨났다고 한다. 복고회은은 사기가 떨어진 삭방군을 이끌고 재차 태원을 공략하나 결국 실패하고, 물러나서 유차를 공격하나 이 또한 실패한다. 거기다 그의 아들이었던 삭방행영절도사 복고창까지 부하들에게 살해당하자 결국 300기의 기병만을 이끌고 북쪽으로 이탈, 영무에 위치한 삭방진의 처소를 지키고 있던 혼석지를 살해하고 영무를 장악한다. 남겨진 병사들이 곽자의에게 모두 귀부했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영무를 점거한 복고회은은 재기를 시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