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복고회은 (문단 편집) == [[안사의 난]] == 755년,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부족을 이끌고 [[곽자의]]를 따라다녔다. 고수암과 설충의를 격파하고 [[사사명]]을 패배시켜 세상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756년 [[당숙종]]이 영무에서 즉위할 때 곽자의를 따라 즉위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동라]] 부족(안록산의 휘하 부족) 일파를 공격해 세력을 꺾기도 하였다. 이 해에 당 조정은 위기를 극복하고자 비록 북방 오랑캐이지만, 빈왕 이수례의 아들 돈황왕 이승심과 복고회은을 화친사로 [[위구르 제국]]에 파견하여 원군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카를륵 카간]]은 자신의 딸을 승심과 정략적으로 혼인하게 하였고, 당 공주의 하가를 요청하였다. 복고회은은 위구르의 사신 엽호제득과 함께 당에 입조하여 양국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합의를 성공시켰다. 위구르의 지원으로 양경을 탈환하고 하북을 평정하자 이에 758년, 숙종은 자신의 어린 딸인 영국공주를 비가궐가한에게 시집보냈다. 더불어 비가궐가한이 자신의 아들과 혼인을 요청하자 숙종은 복고회은의 딸과 혼인하도록 하였으며 위구르를 공식적으로 책봉하여 당과 위구르의 긴밀한 관계가 발전되었다. 이처럼 복고회은의 출신과 당을 돕고자 했던 의지 덕분에 당은 일시적이나마 [[대연]]의 세력을 제압할 수 있었다. 갈륵가한을 뒤이어 [[모우가한]]이 즉위하자 복고회은의 딸이 가한의 가돈이 되었다. 모우가한이 복고회은과 그의 어머니를 만나보고자 하였으나 복고회은은 당의 신료들에게 의심을 받을까 걱정되어 한참 응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 사실을 안 숙종이 허락하여 이들은 태원에서 만났고, 이를 기회로 위구르 제국군이 섬주에 들어와 [[사조의]] 군대를 격파하고 하북을 평정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