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잉 (문단 편집) === 방위 산업 부문 === 보잉은 초창기에 방위사업 부문에도 여러번 기웃거리던 중, 1930년대 초에는 전투기 개발에도 참여하여 미 육군항공대가 운용한 최초의 단엽전투기, [[P-26 피슈터]](Peashooter : 콩알총. 전투기 조종사란 뜻도 있다.)를 개발하였다. 미군은 기체 자체에 불만은 없었으나 지금과 달리 당시의 미군은 해군쪽을 제외하면 그리 강력한 편이 아니었던지라 생산수량은 고작 150대정도였다.[* 그리고 이 P-26을 끝으로 보잉은 그 뒤로 한 번도 제대로 된 전투기를 개발해내지 못했으며, 번번히 각종 전투기 사업에 참여했다가 물을 먹었다.] 보잉이 방위사업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낸건 [[B-17]] [[폭격기]]를 개발하면서부터였다. 사실 이 B-17은 보잉이 그간 여객기를 만들며 얻은 대형기 제작의 노하우를 모두 집대성하여 사활을 걸고 만든 폭격기였다.[* B-17 이전에도 YB-15 등, 몇 가지 폭격기를 제작하였으나 전부 시제기 1, 2대 정도를 만들고는 취소되었다.] 그러나 B-17은 당시 경쟁기종으로 참여한 [[B-18]]보다 지나치게 비싼 가격 탓에 미국 공군도 구매를 망설이게 되었고, 심지어 B-17 구매계획이 취소될 위기에 놓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B-17의 뛰어난 비행능력에 미군은 B-17을 버리기 아까워했고,[* [[제2차 세계 대전|유럽이 불타오르는 와중]]에도 찔금찔금 주문할정도였고, [[진주만 공습]] 이전 [[무기대여법]]을 위한 생산량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보잉 입장에서는 희망고문 수준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전쟁에 참전하게 되자 B-17을 대량주문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무려 1만 2천 7백 대가 생산되었다. 1941년까지만해도 막 늘기 시작한 물량은 고작 수백대였으나, 1942년부터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다른 회사에 물량을 맡길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보잉은 초대형 방위산업체가 되었고, 한동안 여객기 라인업이 상당히 부진하여 고전한 바가 있다. [* B-17 개발에 워낙 사활을 걸어 놔서 만약 미군이 B-17을 사주지 않았으면 보잉은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문닫을 뻔했다고 한다.] 이후 개발한 [[B-29]] 역시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을 상대로 대활약하는 등, 2차대전을 통해서 보잉은 고만고만한 항공기 제작업체에서 명실상부한 정상급 폭격기 개발업체로 발돋움하였다. 이후 제트항공기 시대가 열리자 보잉은 발빠르게 [[B-47]]을 개발하였으며 이후 대형 제트 폭격기인 [[B-52]]를 다시 개발하여 군수분야에서 승승장구하였다. 이런 폭격기 이외에도 자사의 여객기를 기반으로 [[조기경보기]], [[공중급유기]], [[수송기]], [[대잠초계기]] 등을 생산하여 군수분야의 최고로서 이미지를 굳혀갔다. 1960년대에는 [[헬리콥터]] 제작사인 버톨(Vertol)을 인수, 보잉-버톨 헬리콥터 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이후 이 회사는 보잉에 완전히 합병되어 '보잉 헬리콥터 시스템'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보잉 버톨은 [[CH-46]], [[CH-47]] 등 간판급 군용 헬리콥터를 개발하였으며 또 헬리콥터 제작사인 [[벨 헬리콥터|벨]]과 한 팀을 이루어 최초의 군용 [[틸트로터]]기인 [[V-22]]를 개발하였다.[* 보잉에서 V-22의 안정성을 증명한답시고 오바마를 태우고 비행하기도 했는데 V-22는 이런 쇼가 필요할 정도로 개발과정에서 잦은 사고를 많이 겪었었다. 해당 항목으로.] 하지만 미공군의 차세대 폭격기 사업을 [[노스롭 그루먼]]이 따가면서 방산분야 매각설이 나왔다. 매각되지 않는 부분은 지원기 부분이다. 전 세계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 [[미니트맨 III|미니트맨 3]]도 보잉의 개발품이다. 보잉의 [[보잉 707|707]] 개발 이후, 보잉은 방위산업체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떨어지고 말았다. 한동안 상업용 여객기 라인업을 주력으로 판매하던 보잉은 [[맥도넬 더글라스]]를 인수하여 다양한 [[군용기]] 라인업을 다시끔 갖추게 되었다. [[F-15]], [[F/A-18]], [[C-17]] 등의 주력 군용기가 보잉의 품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2000년대에는 [[P-8]], [[E-737]], [[KC-46]] 등의 민항기를 기반으로 한 군용기를 개발하는 곳에는 성공하였지만, [[X-32]]가 [[록히드 마틴]]의 [[F-35|X-35]]에게 패배하는 등 전투기 사업에서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10년대 보잉은 [[사브]]와 함께 컨소시엄을 맺어, [[T-7]]이라는 전투훈련기를 제작해 미국 공군에게 약 300기 가량을 납품하게 되었다. 따라서, 보잉은 [[세인트루이스]] 공장의 가동률을 다시 살아나게끔 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