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시라이 (문단 편집) === [[문화대혁명]] === 한창 고급중학교에 다녔을 때 문화대혁명이 터졌는데, 마오의 직계세력을 제외한 혁명공신들이 대부분 반동으로 몰려 비판받았고, 그 자녀들은 모두 시골로 하방되어 삽질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대권을 잡는 [[시진핑]]도 이 당시 시골로 끌려가 삽질을 했고, 이 당시 계속 입당신청서를 냈지만 반동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번번히 당에서 거부했다.] 하지만 보시라이는 영민하게도 직접 [[홍위병]]에 가담해 이 위기를 넘겼다. 이 당시에는 홍위병의 분파인 연동(連動)의 멤버였는데, 연동에서는 "뿌리가 붉으면 곧은 싹이 나온다", "아버지가 영웅이라면 아들은 호걸, 아버지가 반동이면 아들은 바보" 등의 혈통론을 선전했었다. 하지만 당시 아버지가 반동으로 몰려 자신의 '반동혈통'으로 출세길이 막힐 뻔하자 홍위병들이 보는 앞에서 '''[[패륜|아버지를 두들겨 패]]''' [[갈비뼈]] 2개를 부러뜨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두들겨맞으면서도 속으로는 '제대로 정치인의 자질이 있구나' 하며 기뻐하였다고 한다.[* 차라리 두려움에 제 한 몸 살고자 연극으로서, 생존 수단으로 그랬다면 정당화라도 되련만, 이 시기 홍위병 엘리트들은 그래도 이런 미친 짓거리를 막으려고 시도를 할 정도의 양심과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이런 패륜 직후에 앞장서서 다른 '반동' 출신 홍위병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반동으로 찍히면 가족들도 무사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일부러 다른 가족을 보호하려고 오버했다는 말도 있다. 예를 들어 [[덩샤오핑]]의 아들 덩푸팡은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에게 박해를 견디다 못해 투신자살을 기도했다가(홍위병들이 건물 밖으로 내던졌다는 설도 있다.) 평생 불구자로 지낸 것을 봐도, 차라리 홍위병에 가담해서 아버지를 팬 게 오히려 보신책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강청]]이 나를 반동분자로 선포하자, 나의 아들인 어린 시라이까지도 나에게 철권을 날렸다. 나는 눈앞이 시커멓게 되면서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 독한 어린 아들은 다시 앞으로 나와서 발로 가슴을 몇 번 밟았다. 당시에 늑골 3개가 부러졌다. 이 육친불인, '''손속이 독하고 마음이 악독하고 부친마저도 죽이려 할 정도인 것을 보면, 이 어린 아들은 우리 당의 미래 후계자로서 좋은 재목이다. 나중에 분명히 잘될 것이다.'''" [[http://magneo.egloos.com/550219|(현재 글이 삭제됨)]]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88px-Boyibo1946.jpg|width=300]] 38세의 [[보이보]](1908-2007). [[장수]]하여 아들 보시라이가 그 덕을 볼 수 있었다. 참고로 보시라이 본인도 아버지의 후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인데,[* 보이보의 비서와 간통으로 얻은 아들이다. 보이보는 멀쩡한 전처와 이혼하고 바로 비서와 결혼했다.] 밑에서 이 사람의 결혼 생활이 포함된 사건을 보면 이런 것도 유전인가 할 정도로 닮았다. 문혁 시절에는 교육기관도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였으므로, 보시라이는 이 시기에 대학도 안 가고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