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변진섭 (문단 편집) == 활동 == [[1980년대]] 후반 가요계를 평정했던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대한민국 [[발라드]]의 레전드'''이다.[* 1980년대 후반 박남정, 이문세, 김범룡 등의 인기 가수들이 있었음에도 원탑의 자리를 차지했다. 다만 전성기가 상대적으로 짧았던게 아쉬운 점이라면 아쉬운 점.] 대한민국에 아직 발라드라는 용어가 자리잡지 못했던 시기[* 발라드라는 형식 자체는 1987년 [[유재하]]가 발매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가 [[이문세]]-[[이영훈(음악가)|이영훈]] 콤비와 함께 시초격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이땐 발라드보단 비트로트 음악, 일반 가요 등으로 퉁치는 경우가 많았다.] 발라드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키는데 공을 세우며 [[언론]]에서 처음으로 발라드 가수라고 불리운 가수이다. [[경희대학교]] 동아리 '탈무드' 5기 멤버로서 음악을 시작했다. [[1987년]] [[MBC 신인가요제]] '우리의 사랑 이야기'로 데뷔했다. [[1988년]]에 1집《홀로 된다는 것》을 발표, '홀로 된다는 것', '너무 늦었잖아요', '[[새들처럼]]', '네게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등이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데뷔 앨범부터 큰 인기를 받았다. 이 앨범은 18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27&aid=0000025860|#]] 변진섭은 1집《홀로 된다는 것》으로 골든디스크의 '''신인상과 대상을 동시에 받은 최초의 기록'''[* 2023년에 걸그룹 [[IVE]]가 골든디스크에서 신인상과 대상을 동시에 수상하였다.]을 가진 가수다.[[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057/0001313393|#]] 1988년에 <홀로 된다는 것>으로 남자부문 신인상, 1989년에 <너무 늦었잖아요>로 대상을 수상하여 데뷔 엘범 하나로 신인상과 대상을 거머쥔 처음이자 마지막 가수였을 만큼 당시의 인기는 상당했다.[[https://tv.naver.com/v/4893076|#]] [[1989년]]에 발표한 2집 《너에게로 또다시》 역시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하여 2년 연속 대상 수상이라는 기염을 토해 냈다.[* 변진섭 등장 전에 [[최성수]]가 <남남>, <동행>, <애수>를 차례대로 가요톱텐 1위에 올려놓으며 대표 성인 발라더였지만, 30-40대 팬 위주라 변진섭과는 애초에 팬층이 달랐다. 그 뒤를 [[김종찬(가수)|김종찬]]이 <사랑이 저만치 가네>와 <당신도 울고 있네요>, <토요일은 밤이 좋아>로 한 앨범에서 가요톱텐 1위를 3곡이나 올리는 기록을 세웠으나, 10-20대 팬층이 두터운 변진섭으로 인해 팬 나이대가 높은 김종찬이 묻힌 감이 있다.] 여담으로 겉표지에는 1집이 아니라 독집이라고 써져 있다. 원래는 가수로 밥먹고 살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아 생업을 목적으로 음반을 내놓지 않았고, 이 앨범만 내고 이후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가며 노래를 가끔씩 하려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2번째 밀리언셀러이자 더블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그의 최고의 대표작 2집 [[너에게로 또 다시]]는[* 공식적으로 그의 1집이 최초의 밀리언셀러이며(로열티 공식 집계상 180만 장이었으며, 비공식 300만 장으로 알려져있다.[[https://tv.naver.com/v/4893076|#]]), 비공식 최초의 밀리언셀러는 조용필이다.] <너에게로 또다시>,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희망사항>, <숙녀에게>가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당신의 장난감 당신의 인형', '로라' 등 앨범에 수록된 전곡이 차트 순위권을 석권했다. 특히 '''희망사항'''은 쇼 네트워크 6주 연속 1위, 가요톱텐 골든컵(5주 연속 1위)까지 수상하면서 [[이문세]] 이후 차세대 '''발라드의 황태자'''로 통했다. 공식 집계만 280만 장 이상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당시의 몸값이 최정상이었던 그는 TV 광고를 비롯한 상업적 마케팅과의 단절을 선언하며 오로지 공연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그가 밝힌 이야기에 따르면 어차피 매주 1위를 찍기 때문에 방송국 출연하러 가는 것이 귀찮았다고 한다. 변진섭이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음악만 하기로 한 시점인 1990년대 초반부터 미디어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전성기의 빛나는 모습에 비해, 지명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담으로 1990년 등장한, 변진섭 이후 발라드의 황제로 불린 동갑내기 [[신승훈]][* 프로필상과 공식적으로는 1968년생으로 소개해 왔지만, 실제로는 1966년생이라고 한다.]도 H.O.T, 젝스키스, 터보, god 를 필두로 한 댄스가수들의 등장으로 인해 점차 최정상의 인기에서는 멀어져갔다. 대표곡은 대체로 1집과 2집에 쏠려있는 편. 1집의 '''홀로 된다는 것''',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 뿐', '''새들처럼''', '''너무 늦었잖아요''' 가 유명하며 2집에서는 '''너에게로 또 다시'''[* [[최수종]], [[하희라]], [[김민종]]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변진섭도 카메오로 잠깐 나온다.], '''숙녀에게''', '''[[희망사항(노래)|희망사항]]'''[*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로라',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등 수록 전 곡이 히트를 쳤다. 한 앨범에서 이 정도씩이나 히트곡이 나왔으니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라 불릴 만하다.[* 가요 프로에서 1위 후보에 자기 노래 두 곡을 동시에 올려놓는 경우도 자주 있었고 1위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방송국에 상 받으러 가는 걸 귀찮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대박 히트곡이 줄었지만 5집의 '''그대 내게 다시'''[* 원곡은 임형순, 작사 노영심]와 같은 곡은 후배들에게 자주 리메이크되었다.[* 김이나 작사가에게 큰 영향을 준 곡이라고 한다.] 참고로 2집에 수록된, [[윤상(가수)|윤상]]이 작곡한 '로라'는 [[사이토 유키(배우)|사이토 유키]]의 '정열'을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52200289109003&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5-22&officeId=00028&pageNo=9&printNo=1566&publishType=00010|표절]]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 하반기에 발표한 3집은 앨범 자체의 완성도가 훌륭했고 200여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기는 했지만, 워낙 괴물 같은 포스의 2집 앨범 때문에 상대적으로 심심한 평가를 받는데 그친다. 2집의 대히트로 인한 대중들의 기대는 컸기에 3집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전작만큼의 호응을 얻기에는 부족했다. 3집 앨범 역시 밀리언셀러 기록을 남기며 변진섭의 밀리언셀러 앨범은 총 3장이라고 할 수 있다. 후속곡으로 나온 <어떤이별>과 <미워서 미워질때>가 역시 평범한 히트를 하는데 그쳤고, 그 외에 <그대만의 모습>, <꿈에 본 겨울> 같은 곡들이 알려지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전작에 비해 뒤떨어진 느낌이라는 평을 듣는다. [[1991년]] 음악적 전환을 모색하여, 4집 앨범의 타이틀 곡은 심상원 작곡의 '너와 함께 있는 이유' 이지만 그 외 나머지 곡의 대부분을 [[김수철(가수)|김수철]]에게 받은 곡으로 채우는 파격적인 시도를 한다. 락, 블루스, 포크 등 색다른 감성의 곡으로 대중성보다는 음악적 전환점을 모색하는데 컨셉을 둔 것이다. 이 당시 [[신해철]]과의 리믹스&베스트 앨범인 <신해철 · 변진섭>을 내기도 했다. 다만 신해철은 이 앨범에 대해서 "두 가수의 만남이라기보다는 두 회사 사장님들의 만남"이라고 평가했다. 그래도 수록된 음악의 퀄리티는 높다. 이러한 컨셉은 [[1992년]]에 나온 5집에서도 이어지는데 당시로서는 신인 작곡가였던 [[김형석]]의 <그대 내게 다시>를 타이틀로 발표하여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는 한편, 앨범의 절반을 [[조규찬]]에게 받은 곡으로 구성한다. 감수성과 참신함이 돋보이는 음악으로 대중성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대 내게 다시>는 밴드 다섯손가락의 리드보컬이었던 임형순이 1991년 상반기에 먼저 수록곡으로 발표했으나, 변진섭에게 가서 빛을 봤다. [[1994년]] 6집의 타이틀곡 <니가 오는 날> 은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 구성되는 편곡과 특별히 자극적인 후렴구도 없는 잔잔한 진행이지만 역시 대중적인 호응을 얻으며 변함없는 그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다만 그 무렵의 대한민국 가요계는 댄스 음악, 레게, 힙합 등의 장르를 중심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신승훈]], [[이승환]], [[룰라]], [[넥스트(밴드)|N.EX.T]], [[015B]], [[듀스(음악그룹)|듀스]], [[노이즈]]같은 괴물들이 춘추전국을 이루던 시절이라, 변진섭이 과거와 같은 영광을 누리기에는 이미 때가 많이 늦었다. 그래도 거의 2년에 한 장씩 정규 앨범을 발표하면서 히트곡 하나씩은 만들어내는 꾸준한 활동을 계속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워낙 포스가 막강했던 1, 2집 시절만을 기억하기 때문에 특별히 변진섭의 팬이 아니라면 그가 가수 활동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사람들이 제가 오랫동안 가수를 쉬었던 걸로 알아요' 라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이미지 때문에 영화 [[라디오 스타(영화)|라디오 스타]]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의 대표곡 중 '새들처럼' 이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는 희망을 주는 노래라 연말 불우이웃돕기 영상에 BGM으로 자주 나오는 노래이기도 하다. '희망사항' 역시 발표된 지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라디오에서 연애와 관련된 사연이 나오면 자주 나온다. 또한 당시 매니아만 알고 있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노영심]]이 '희망사항'에서 피처링 해준 덕택에 대중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인재들을 보는 안목 또한 탁월했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거의 무명 수준이었던 작곡가들인 [[주영훈]], [[이경섭]], [[윤일상]], [[김경범(작곡가)|알고보니 혼수상태]] 등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눈여겨 보고 그들과 같이 음악 작업을 하기도. 심지어 SBS 아카이브 K 방송에 나와서 본인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2집 역시 본래는 당시 뮤지션들 사이에서 천재라고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신인 [[유재하]]와 작업하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