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변발 (문단 편집) === 청나라 후기 ===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는 이렇듯 엄청난 반발이 있었는데, 변발을 행한지 몇 백여년 간의 오랜세월이 흐른 까닭에 점차 '역시 남자라면 변발이 멋져야지' 같은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발을 전문으로 가꿔주는 직업이 등장하는 등 한족들, 특히 화북 지역 중국인들의 경우 만주족들의 풍습처럼 중히 여기게 된다. 그 사례로 펄 벅의 작품 '대지(the Good Earth)'의 주인공 왕룽은 화북 지방 사람인데, 한족임에도 변발을 목숨같이 아낀다. 이발사가 장난삼아 '요즘 변발 자르는 게 유행이라더라, 이 변발만 자르면 흉한 농부 꼴은 면할 것이다'라고 하자, 기겁할 정도. 그런데 정작 나중에 기생 연화(롄화)에게 빠져 그녀가 촌스럽다고 하자 순식간에 잘라버리고, 아내 오란은 기겁한다. 사실 화남 지역은 예로부터 한족 전통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었고 그에 따라 청나라 초기의 변발령이 화남 지역에서 특히 반발이 심했으며 반청복명사상도 화남 지역에 기반을 두었다. 반면 화북 지역 한족들은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예로부터 북방 유목민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화북 지역 한족들은 유전적으로 몽골인들과 비슷하며 동북 3성 한족들은 유전적으로 만주족과 비슷하다. 그에 따라 화북 지역 한족들은 다른 지역 한족들에 비해 변발에 적응하는 속도도 상대적으로 빨랐기 때문에, 신해혁명 이후의 변발 금지령은 변발령과는 반대로 화북 지역에서 특히 반발이 심했다. 변발령은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이는 엄격하게 시행되었으며, 심지어 20세기초 청나라가 망하기 직전에도 해외에 유학하면서 변발을 잘라버렸던 지식인들도 귀국후에는 관원들의 단속을 피해 가짜변발을 붙이고 다녔다고 한다. 중국 혁명군들은 음양두를 틀어올려 상투처럼 머리 꼭대기에 묶고 다니다 단속 때 풀었다는 기록도 있다. 한족의 부흥을 외친 반란세력들은 만주족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변발을 하지 않고 전통적인 속발을 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태평천국]]의 반란군들이었다. 그리하여 태평천국의 난을 장발족의 난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심지어는 19세기 말, [[틈관동|봉금령이 풀려]] 된 이주가 가능해진 [[연변]]지역으로 수많은 [[조선]] 출신 이민이 유입되었는데, 청나라는 이 조선인들에게도 변발을 강요했다. 다만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 강력하게 단속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며, 이때 변발을 한 사람은 1%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localCode=krcn&contentsId=GC05308213|#]] 현재도 화북지역의 중국인 남성들은 아주 젊은 층을 제외하면 머리를 잘 기르지 않는다. 물이 부족한 기후의 영향이 여전히 크다.[* 물이 부족한 곳은 황하 이북이며, 사실 남방 지역은 한반도보다 더 비가 많이 온다.] 머리를 월 단위, 심하면 절기 단위로 감는 사람이 허다하다. 그리고 노년층들은 민머리가 많다. 딱히 변발 풍습이라기보다는 위생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파일:attachment/Byeonbal1.jpg]] 19세기 말 청나라 사람들의 [[미국]] 이주가 활발해졌는데, 미국인들은 중국인의 변발을 보고 [[돼지]] [[꼬리]](pig tail)라며 조롱했다. [[능지처참]]과 마찬가지로 이런 머리를 하는 중국인은 야만적이므로 우리가 개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널리 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그 야만인들에게 은 수백~수천냥씩을 쥐어주고 비단, 차, 도자기 등을 사와서 [[시누아즈리|상류층의 문화]]로 즐겼다는 말이 되니 틀린 관점이다. 물론 당시 서구의 가치관상 그런 모순 따위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진짜 우리만 문명인이고 남들은 전부 야만인이라고 '''믿었고''' 이 믿음에 부합하는 논리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쑨원]] 등의 혁명가나 청나라 출신 유학생들은 외국인 친구들에게 변발은 원래 중국의 풍습이 아니라고 설명하며 오해를 풀고 다녀야 했으나, 평범한 서양인들이 만주족과 한족이 뭐가 다른지를 알았을리가 없다. 이때쯤이면 만주족도 많이 한화되었고 애초 중국 사람은 대부분은 한족이니 중국에서 아무나 한 명 찍으면 한족인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만주족과 한족을 구별할 수 있었을 리 없다. 때문에 이들 중국인들은 난데없이 열폭하는 사람 취급을 못 면했다. 이렇게 해외에서 변발을 자르고 단발을 하고 다니던 사람들은 변발 없이 중국에 들어오다 걸렸다가는 목이 떨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에 가짜 변발을 붙인 모자를 쓰는등 여러 방법으로 변발을 '연출'하곤 했다. 영화 <[[아편전쟁]]>에서는 극 초반부에서 입항을 앞두고 남장을 한 영국인 여주인공이, 청나라 출신이지만 서양인들 사이에서 일하면서 단발로 지내던 남주인공이 꺼내 쓰는 모자를 보고 여자애 같다고 웃어대다 모자를 뺏어서 도망다니는 장면이 묘사된다. 청나라 사정에 밝은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이를 보고 쟤는 저거 없으면 모가지라며 혼을 내서야 겨우 돌려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