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자 (문단 편집) === [[유구르타 전쟁]]기 === >이 위대하고 부유한 도시의 모든 것이, 학살과 약탈에 놓였다.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크리스푸스]]22, 벨룸 루구르티눔에서 바카의 함락을 평하며 압도적인 로마 군세에 [[유구르타]]는 적을 내륙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수도 바카를 포기하고 철수하였다. 바카를 접수한 메텔루스는 도시를 요새화하고 수비대를 배치하였다. 이후 게릴라 전을 펴던 유구르타는 메텔루스가 자마 공방전에서 수렁에 빠지자 로마군의 본영을 공격했으나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격퇴되었다. 한편 기존의 수도 바카의 수복을 노리던 유구르타는 로마군의 방어 태세에 무력 점령은 불가능하다 여기고 바카의 주민들을 회유하였고, 결국 포섭에 성공하였다. 따라서 바카의 유지들은 축제날에 로마 주둔군의 장교단을 연회로 초청하여 자신들과 친분이 있던 지휘관 투르필리우스를 제외하고 전부 학살하였다. 석방된 투르필리우스 역시 뇌물을 주어 살아남았다는 혐의로 메텔루스에 의해 처형당한다.[* 정확히는 마리우스를 비롯한 메텔루스의 장교들이 투르필리우스가 뇌물을 주어 살아남았다며 의심하였고 어쩔 수 없이 투르필리우스를 처형한 메텔루스는 뒤늦게 투르필리우스가 결백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리우스를 적대하게 된다.] 그후 비무장 상태로 활보하던 로마 병사들까지 살해되었고, 성채로 피신하려 했던 일부 생존자들 역시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한 주민들이 돌을 던지는 등 공격을 당하여 죽었다. 이로써 유구르타는 로마에 의해 요새화된 바카를 병력 손실도 없이 되찾았고, 주요 거점을 어이없이 내어준 것에 충격을 받은 히포 디아리투스 (비제르트) 진영의 메텔루스는 며칠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후 복수를 결심한 메텔루스는 유구르타의 부관 보밀카르를 매수, 그가 이끄는 누미디아 기병대를 앞세워 바카로 향하였다. 군대의 접근을 알게 된 주민들은 로마군이라 여겨 성문을 닫았지만, 선두의 누미디아 말을 본 후 성문을 열고 일단의 주민들이 맞이하러 나갔다. 그러자 메텔루스는 즉시 이들을 포위해 몰살시켰고, 충격에 휩쌓인 성내의 주민들은 성문을 걸어 잠그고 수비에 나섰다. 하지만 3일 간의 공성전 끝에 바카는 함락되었다. 주민 중 성인 남성은 학살되고 나머지는 노예로 팔렸다. 메텔루스는 도시에 방화하여 복수를 완수하였다. 그후로도 5년여간 이어지던 전쟁은 기원전 105년 마리우스와 [[술라]]의 활약으로 유구르타가 붙잡혀 처형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