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스파시아누스 (문단 편집) == 평가 == 베스파시아누스에 대한 평가는 그가 69년 내전과 유혈사태로 얼룩진 로마를 안정시키고, 70년부터 네로와 갈바, 비텔리우스가 저지른 실정을 수습한 것만으로도 당대 로마인들에게 과거 옥타비아누스의 악티움해전 승리 못지않다고 찬사를 받았다. 아울러 이 황제가 재위기간동안 벌인 일들은 아우구스투스 못지않게 광범위하고 로마의 1세기 중후반 ~ 2세기까지 그 연속성을 지속케했기에, 당대사가들과 근현대사가들은 이런 그를 '''제정 로마의 제2 창건자'''라고 했다. 그러나 당대사람들의 일관된 이야기처럼, 베스파시아누스는 특별대우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본인 스스로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카리스마와 묘한 매력, 특별한 신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장남 티투스 역시 이런 입장을 견지하여 시종일관 겸손했다. 반면 차남 도미티아누스는 칼리굴라를 연상시킬 정도로 개인 숭배와 자기신격화로 일관해 그 평가가 원로원에게 박했다.]. 그래서 혹자들은 베스파시아누스를 2세기 로마 제정 최고의 황금기를 열었던 명군, 오현제보다 휼륭한 진정한 현군이라고 더 높여 평가해준다. 그는 사상 최초로 수도 로마가 아닌 이탈리아 지방 출신의 황제였고, 이는 이후에 로마 황제의 출생지에 대한 로마 제국 백성들의 생각을 바꾸게 되어 나중에 가면 속주 출신 황제들도 나올 정도가 되게 한 선구자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세리 집안의 차남으로서 로마 제국의 권부 최상층에 오르기 어려운 신분이었으나, 치밀함과 부지런함으로 자신의 신분을 끌어 올린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였고, 제위 등극 자체도 개인적 야심을 앞세워 등장한 권력자도 아니었다. 모국의 다큐에서는 이 사람과 네로를 비교하면서 네로가 와인을 홀짝거리면서 오페라 관람을 하는 속물이라면, 베스파시아누스는 맥주를 들이키면서 축구 경기를 보는 건실한 서민적 남성이라고 했다. 확실히 점잔빼면서 고상한 취향을 가장하는 네로의 시를 듣다가 '''졸아버린다'''든가 재위 중에 축구장만 한 콜로세움을 착공한다든가 한 것을 보면 단순히 서민들에게 아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서민적인 취향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황제들은 돈이 궁하면 재정 마련 수단으로 정적을 역적으로 몰아 죽여서 재산을 몰수하는 악랄한 일석이조의 행동을 종종 했지만 베스파시아누스는 이런 짓을 일절 하지 않아 칭찬을 들었다. 대신 재정적자 해결의 수단으로 여기저기에 온갖 간접세를 붙였다. 따라서 이런 그의 행동은 "지나치게 돈을 밝힌다"고 까였다. 이는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그의 장례식에도, 심지어 현대 이탈리아에서도 이름이 회자될 정도다. 공중변소의 오줌에까지 세금을 매기는 등 다소 치졸한 명목의 세금도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에게는 짠돌이 황제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사후에 베스파시아누스를 풍자하는 [[희곡]]이 상연되었는데, 그 내용이라는 게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장례비로 1천만 [[세스테르티우스]][* 현대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수백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물론 아무리 황제의 장례식이라도 실제로 이 정도의 돈이 들었을 리는 없고 풍자를 위한 과장이라 봐야 할 것이다.]가 들어갔다고 하자 죽은 베스파시아누스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차라리 그 중 1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미리 나한테 주고 내 몸은 그냥 테베레 강에 던져버리지 그랬어!'''"라고 절규하는 [[고인드립]]성 내용의 희곡이었다.[* 고대 로마에서 죽은 자의 시신을 테베레 강에 버린다는 건 '''[[부관참시]]'''를 의미했다.] 그럼에도 황제 티투스는 그 희곡이 상연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차피 베스파시아누스가 그렇게 돈에 집착했던 것이 물욕이 많아서가 아니라 워낙 좋지못한 국가 재정을 복구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건 당시 로마인들이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풍자가 플라비우스 왕조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은 아니었다. 물론 악의가 없어 웃어넘길 수 있는 유머에도 과민반응해 피바람을 일으키는 권력자가 동서고금 통틀어 얼마나 많았는지를 생각하면 베스파시아누스나 티투스의 관용과 자제심을 낮게 평가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특히 [[티투스]]는 상당히 겸손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유명한 황제였고, 아버지 스스로가 평생 자신의 인색함을 적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부단히 긍정적인 유머 소재로 삼아 온 탓인지 본인도 이에 익숙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