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베투 (문단 편집) === 클럽 경력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베베투브라질.png|width=100%]]}}} || 국가대표팀 커리어에 비해 베베투의 클럽 커리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가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췄던 호마리우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임팩트 있는 클럽 커리어를 보냈다. 베베투는 20대 대부분을 브라질에서 보냈다. 비토리아를 거쳐 플라멩구에서 1983년부터 1989년까지 80경기 34골, 바스쿠 다 가마에서 1989년부터 1992년까지 53경기 28골을 득점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as00.epimg.net/1479321774_699222_1479322139_noticia_normal.jpg|width=100%]]}}} || || '''{{{#fff 영광의 데포르티보 시절}}}''' || 1992년 여름, 만 28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처음 유럽 무대를 밟았다. 행선지는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라리가]] 91-92 시즌 간신히 강등을 면한 무명 구단에 불과했다. 베베투가 오기 전까지 데포르티보는 이렇다 할 트로피도 하나 없었고 2부 리그에 머물던 정말 보잘 것 없는 팀이었다. 그렇기에 당시 베베투의 이적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전문가들은 '갸날픈 베베투가 라리가의 피지컬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라며 의구심을 품었지만 베베투는 데포르티보 그리고 라리가의 역사를 뒤흔들었다. 1992-93 시즌에 베베투는 37경기 29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을 차지한 동시에 데포르티보를 3위까지 견인했다. 이는 데포르티보 구단 역사상 1950년 준우승 이후 가장 높은 순위, 첫 유럽 대회 진출, 첫 득점왕 배출이었다. 1993-94 시즌에 34경기 16골을 기록했고 데포르티보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이 준우승은 데포르티보 팬들의 한이 깃들어 있는데 우승 목전에서 바르셀로나에게 트로피를 내줬기 때문이다. 리그 마지막 경기 발렌시아 전에서 데포르티보는 경기 종료 직전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성공시킨다면 [[FC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상황이었다. [[페널티킥]] 전담 키커였던 베베투는 부담을 느끼고 미로슬라프 쥬키치에게 양보했는데 듀키치가 실축하면서 우승을 코 앞에서 놓친 것. 만약 베베투가 나서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고 우승을 확정지었다면 그의 평가는 훨씬 더 높아졌을 가능성이 높다. 1994-95 시즌에 26경기 16골을 넣었다. 마침내 [[발렌시아 CF|발렌시아]]를 누르고 데포르티보의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었다. 아쉽게도 리그는 2년 연속 준우승. 그래도 데포르티보의 구단 역사상 그리고 베베투에겐 유럽 무대 진출 이후 첫 트로피를 획득했던 특별한 시즌이었다. 1995-96 시즌에 34경기 25골을 넣었다. 데포르티보는 [[UEFA 컵위너스컵]][* 현재 [[UEFA 유로파 리그]] 통합] 4강까지 진출했으나 리그는 9위로 마감. 베베투는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데포르티보를 떠나 브라질로 컴백했다. 무명 클럽 데포르티보를 라리가의 신흥 강호로 거듭나게 만든 장본인으로 괜히 '''데포르티보 팬들 가슴 속엔 [[호마리우]]보다 위대한 공격수'''가 아니다. 베베투 세대의 일원들이 기반을 닦아놓지 않았더라면 데포르티보의 99-00 시즌의 리그 우승 및 제2의 전성기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라리가]]에서 영구결번 시스템이 있었더라면 데포르티보 역사에 베베투 이후 11번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브라질 국적이지만 베베투의 조상은 데포르티보의 연고지인 갈리시아 출신이었다. 본인 역시 "'''나의 조상은 갈리시아 출신이다. 나는 여러분의 가족이다'''"라며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훗날 구단 창립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데포르티보를 떠나 브라질로 컴백한 것을 제일 후회한다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후 베베투는 [[보타포구 FR]], [[CR 바스쿠 다 가마]], [[EC 비토리아]] 등 브라질 리그의 주요 클럽 및 [[J리그]]의 [[가시마 앤틀러스]]에도 몸 담았다. 이후 [[알 이티하드 FC]]에서 뛰다가 2002년 11월에 은퇴했다. 의외로 한국과도 접점이 있는데 가시마 앤틀러스를 떠난 2000년에 [[전남 드래곤즈]]와 [[울산 현대]] 입단이 타진된 적도 있고, 2003년 3월 10일 한국과 브라질 클럽 친선경기 참가차 한국을 방문한 베베투는 [[K리그1]] 진출의사를 밝혔지만 아쉽게도 무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