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두인 (문단 편집) == 특징 == 원래는 부족 제도의 특성에서 오는 분열성이 심하고 그 중심에는 씨족 간 다툼이 그치지 않아 좀처럼 뭉치지 못하는 민족이었다. 오죽하면 이슬람의 위대함이란 이 베두인들을 한 지도자 아래 결집시켜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라고 할 정도이다. 척박한 지역에 살고 있으므로 인구밀도가 낮고 사막지역을 관통해 이동했기 때문에 지리에 대한 독점적 지식이 있었다. 덕분에 무역업에 종사할 수 있었고, 또한 무역업에 종사하는 다른 대상들에게 길잡이 통행세를 걷거나 호위병 용병업을 하기도 했다. 베두인족의 영역을 지나가는데 베두인족 호위병을 쓰지 않으면 베두인족에게 습격당해 죽기 쉽고, 대우가 좋지않거나 호위하는 물건가격이 매우 높으면 호위하라고 고용한 자들이 산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신용받는 사람들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사막을 나와 농경지역으로 와서 살인과 약탈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정주민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이런 사건이 발생할 시 술탄이 보낸 군대에 의해 주기적으로 무차별한 학살을 당하기도 하며 만성적인 차별과 탄압의 대상도 되었다. 그래서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유목민족으로서 성격이 맹렬하고 싸움에 있어선 무자비했기 때문에 초기 이슬람의 세력 전파에 중추적인 군사적 역할을 수행했다. 초기 이슬람의 세력 전파 후 군영 도시의 주요 구성원들. 누가 찾아와서 의탁하더라도 하루에 차 혹은 술을 한 잔씩 주며[* 첫잔은 손님을 위한 잔, 두번째 잔은 손님의 명예로운 칼을 위한 잔, 세번째 잔은 [[꽐라|손님을 기분 좋게 하는 잔]]] 3일은 무조건 보호해주는 [[접대의 관습|규칙]]이 존재한다. 국가 이전의 부족 사회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인이나 개성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며 씨족, 가족 등 혈연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직도 많은 베두인들이 과거의 삶의 방식을 고수해오고 있기에 씨족 개개인의 모독을 씨족 전체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의 연장선상에서 요르단,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은 자신의 조상이 베두인이라는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베두인의 후손들은 확실히 가족 소개를 들어보면 적어도 자기 6~7대 조부 이름까지는 줄줄이 외운다.[* 아랍인들 이름만 보더라도 ~가문의 ~의 아들인 ••식으로 씨족과 혈통이 강조된다.] 유목민이지만 모두 유목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부터 상인이 되어 중개무역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도시나 마을로 가서 정착하여 농사짓고 장사를 하여 정주민족들과 어울려 살기도 했다. 또한 어업에도 종사하여 어부로 사는 베두인들도 있다. 현재는 [[이촌향도]] 현상에 따라 베두인들의 생활도 많이 바뀐 터라 대부분이 도시와 마을로 이주하여 생활한다. 진짜 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들은 전체 인구에서 고작 5%에 불과하며 반유목 생활하는[* 도시와 농촌에 가서 돈 벌고 베두인 마을에 와서 유목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베두인들조차 10%에 불과하다. 특히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사막화로 유목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터라 더는 유목 생활에만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요즘은 요르단 국왕이 도시에서 [[복지|무료로 물을 나눠줘서]] 유목생활을 하더라도 도시는 반드시 들려서 물을 보충한다는 듯 한다고 한다. 당연히 물만 받지는 않고 도시 이곳 저곳을 관광하고 와서 유목생활에 [[현탐]]이 와버린 경우도 많아 반유목생활이나 도시생활 인구가 많아진다. 관습적으로 족장과 족장의 후계자는 칼을 차고 다니는데, 장검이 아닌 실생활에 용도가 많은 화려하게 장식된 단검으로 잡아먹을 [[할랄 푸드|짐승의 숨통을 고통없이 단숨에 끊을 때 사용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