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네딕도회 (문단 편집) == 개요 == >베네딕도는 오늘날 "서방의 아버지"라는 유일무이한 경칭을 얻었다. 실제로 서방의 그리스도교는 베네딕도 수도제도의 형성 없이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발전하였다. ... 베네딕도는 (교육에 적대적이었던 이전의 수도원 생활방식과 달리) 완전한 수도제도를 위해 학문과 지적 활동을 강조하면서 규칙서 안에 이러한 내용을 실었다. > >......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서가 가장 성공적인 수도서가 된 반면, 아우구스티누스 규칙서와 이전의 다른 수도서들이 그렇지 못한 근본 이유는 베네딕도 수도서처럼 인간에 대한 깊은 깨달음, 비판적으로 숙고된 체험, 여기서 귀착되는 적절한 균형, 동시대적 적응력을 바탕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 >-Hubertus R. Drobner 지음, 하성수 번역, [[https://www.bundobook.co.kr/goods/view?no=1684|《교부학》]]{{{-2 [[https://www.amazon.com/Lehrbuch-Patrologie-German-Hubertus-Drobner/dp/3631630808|Lehrbuch der Patrologie]]}}} 633-637쪽. >1964년 10월 24일 교황 [[바오로 6세]]는 성 베네딕도를 "구라파의 주보"(Patronus Europae)로 선포하고 7월 11일을 그 축일로 제정하였다. 이보다 앞서 성 베네딕도는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 그리고 "기술자와 건축가와 개간자들의 주보"로 불리고 있다. 그에게 붙여진 이러한 여러가지 명칭은 그의 생애에도 근거하지만 특히 그의 규칙서를 지키며 그를 사부로 모시는 후대의 제자들이 역사 안에 이루어놓은 업적에 근거하고 있다. 로마제국의 문화가 야만족의 침입으로 인해 붕괴되고 와해되는 혼란한 시기에 "기도하고 일하는"(Ora et labora) 베네딕도 수도자들이 문화 유산을 보존하였으며, 정치적인 안정을 되찾은 구라파에 문화를 발전시키고 꽃피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규칙서는 12세기까지 서방교회의 대부분의 수도원들에서 지켜졌으며, 그후에도 서방교회의 수도생활의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 >-이형우 번역, [[https://www.bundobook.co.kr/goods/view?no=6665|《베네딕도 수도규칙》]] 해제, 20쪽 {{{+1 Ordo Sancti Benedicti}}} {{{+1 O.S.B. }}} [[이탈리아어]]: Ordine di San Benedetto [[독일어]]: Benediktinerorden [[영어]]: Order of Saint Benedict 수도규칙 열람: [[https://www.olivetano.com/regulation|#]]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가 쓴 [[베네딕토#성 베네딕도 규칙서|베네딕토 규칙서]]를 따르는 [[그리스도교]]의 [[수도회]]. 약칭 OSB. 사실 정확한 [[한국어]] 명칭은 베네딕'도'가 들어간다. 국내 한정으로 '베네딕토'를 한자로 음차하여 '분도'(芬道)라고도 하기 때문에, 베네딕토회를 '분도회'라고 하기도 한다. 연합회의 모토는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 서양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수도회인데, "중세 초기의 혼란기에 수도원들이 서구 문명을 보존" 어쩌고 하는 흔히 들어봤을 법한 설명에 등장하는 그 수도원들이 바로 베네딕도회이다. 비록 베네딕도회가 최초의 수도자들도,[* 시대적으로 [[안토니오 아빠스]] 등 이집트 은수자들이 앞선다.] 최초의 공주(共住)[* 사막이나 동굴 등에서 혼자 생활하던 은수자들과 달리, 수도원에서 집단으로 생활함을 의미.] 수도자들도,[* 최초의 공주 수도생활은 이집트의 성 파코미우스(Pachomius, 290?-346/347년)가 창시하였다.] 최초의 서방 수도자들도[* 서방 안으로 한정하더라도, 아우구스티누스가 베네딕도보다 먼저 공주 수도생활을 하였다.] 아니었지만 베네딕도는 선배 수도자들의 시행착오를 종합하여 중용을 갖춘 《수도규칙》을 저술했으며, 이는 12세기까지 서방의 수도규칙을 거의 통일하다시피 했고 이후에도 수도생활의 기초가 되었다.[* 이는 위대한 교부이자 베네딕도보다 앞서서 수도생활을 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수도규칙도 누리지 못했던 명예이다.] 1000년 넘게 이어가고 다른 수도회에도 최중요 참고서가 되어줄 중용의 규칙을 입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고려한다면, 베네딕도 수도규칙의 위대함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베네딕도회는 브리타니아와 북유럽의 게르만족 대상 선교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신흥 민족들을 그리스도교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 수도회는 정주 서원을 하고 소속 수도자는 수도승이라고 불린다. 여자는 수녀승. 그러나 활동수녀회는 베네딕토 규칙서를 사용하더라도 수녀승이 아닌 수녀라고 불린다. 기본적으로 베네딕토회는 정주와 봉쇄가 기본이지만 연합회의 성격에 따라 변화된 곳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에서 유명한 왜관수도원과 툿찡수도원이 속한 선교 베네딕토회라고 불리는 오틸리아 연합회가 그러하다. 올리베따노라고 불리우는 몬떼올리베또 성 마리아 연합회에 속한 수도원들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적시했다. 베네딕도회는 다른 [[수도회]]들과는 달리 중앙집권적인 구조가 아니라 여러 개별 수도원들이 하나의 울타리 안에 옹기종기 모인 형태이다. 물론 이 개별 수도원들이 묶인 베네딕토회 연합회가 [[로마]]에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위스]] 연방정부 같은 느낌. [[베네딕토]] 규칙서만 따르면 베네딕토회라고 칭하는 아주 느슨한 구조라, [[성공회]]에도 베네딕토회가 있다. 다만 연합회에는 소속되지 않았다. 중세 서방교회에서 베네딕토회가 모든 서방 수도회의 모범이 되면서, 베네딕토회는 아니어도 베네딕토 규칙서를 따르는 수도회들도 생겼다. 시토회[* 1, 2, 3, 4, 6으로 0부터 9999까지 표기 가능한 [[https://en.wikipedia.org/wiki/Cistercian_numerals|숫자]]를 발명하기도 했다.], 트라피스트회 등이 '베네딕토 규칙서를 따르긴 해도 베네딕토회는 아닌' 수도회로서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아울러 [[경상북도]] [[칠곡군]]의 왜관 대수도원장([[아빠스]] Abbas/ 영 Abbot/ 독 Abt)은 [[한국 가톨릭]]의 유일한 [[교구|자치수도원구]]장 서리를 맡고 있다. 그밖에 [[분도출판사]] 본사와 서울 분원이 [[서울특별시]] [[중구(서울)|중구]] 장충동에 있지만, 대로변에서 벗어난 주택가에 자리잡아 수도분원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베네딕틴|이 수도회의 이름을 딴 술]]도 있다. 항목 참조. [[한국전쟁]] 중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싣고 남쪽으로 내려온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제너드 라루 선장은, 전쟁 후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수도자]]가 되었고, '마리노'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마리노 수사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고, 2001년 사망했다. 그 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마리노 수사가 지내던 미국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경영난으로 폐쇄되려는 것을 한국 왜관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복구했다. 이 이야기는 소설가 [[공지영]] 마리아의 장편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의 모티브 및 소재가 되기도 했다.[* 주인공 정 요한 신부의 할머니가 [[흥남 철수]] 때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남쪽으로 피난 왔으며,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정 신부의 아버지가 태어났다. 훗날 정 요한은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수도사제가 되었고, 미국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복구하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 여담으로 해당 수도회가 있는 [[https://en.wikipedia.org/wiki/Abbey_of_Santo_Domingo_de_Silos|산토 도밍고 데 사일로 수도원]]에서 1995년에 발매한 앨범에 있는 [[https://www.allmusic.com/album/chant-ii-mw0000154821?1652527503981|찬송가]]중 [[https://www.youtube.com/watch?v=hMEQELe02Eo|하나]]가 [[언더테이커(프로레슬러)|언더테이커]]의 [[드루이드]]들의 등장곡으로 쓰여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