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벚꽃축제 (문단 편집) == 역사 == [[일본]]의 하나미(花見)에서 유래되었다. 하나미라는 단어 자체는 '꽃구경'이라는 뜻이지만, 일반적으로 벚꽃 구경을 뜻한다. 왜냐하면 별도의 표기가 없다면 일본에서 하나(花)라는 단어 자체가 벚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본후기(日本後紀), 弘仁3年2月12日자 기사에 따르면, 기록상 확인되는 최초의 하나미는 812년 3월 28일 [[사가 덴노]]가 신천원(神泉苑)에서 개최한 '화연의 절(花宴の節)'이다. 더 유래를 파고 들면 중국 [[당나라]] 시대에 동시기 [[나라 시대]]였던 일본이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왕실에서 [[유교]]에서 좋게 봤던 매화, 복숭아꽃, 살구꽃 등을 구경하고 놀던 것이 시초이다. 그러다가 [[헤이안 시대]]에 벚꽃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으며 당시에도 벚꽃놀이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인기 아이템이었다. > 만약 세상에 벚꽃이 없었다면, 봄을 보내는 마음이란 얼마나 평안했을 것인가 > (世の中にたえて桜のなかりせば春の心はのどけからまし) > - 아리와라노 나리히라(在原業平, 825년 ~ 880년), [[헤이안 시대]]의 일본 귀족 및 시인 이후 [[겐지모노가타리]](11세기초)에서는 이미 '하나미'라는 단어가 벚꽃 구경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 하나미의 의미는 벚꽃을 구경하는 것으로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 [[가마쿠라 막부]]와 [[무로마치 막부]]를 거치면서 하나미는 각 지방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가마쿠라 시대의 승려였던 요시다 겐코(吉田兼好, 1283~1352)는 도연초(徒然草)라는 산문집을 남겼는데 그중 137단에 보면 자신이 체험한 하나미와 시골에서 개최되는 하나미의 다른 점을 비교하는 문구를 남겨놓았는데 이를 보아 각 지방에 하나미의 풍습이 퍼졌고 그 양태는 지방마다 달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로마치 시대에 하나미를 가장 좋아했던 인물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꼽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4년(文禄3年)에 [[나라]]지방의 요시노산에서 대규모의 하나미를 개최했는데(吉野の花見) 당시 몰린 사람은 약 5천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 풍경은 吉野花見図屏風라는 이름의 높이 153.0cm 넓이 356.8cm에 달하는 그림으로 남겨져 있다[[https://bunka.nii.ac.jp/heritages/detail/43081|#]]. 오늘날에도 요시노산은 일본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로 알려져있다. [[파일:yoshino.jpg]] 吉野花見図屏風(부분)[[https://www.kcua.ac.jp/2020-nakamura-miyo/|#]] 그리고 [[에도 시대]]를 거치며 서민 문화로도 퍼지게 되며 이 시기에는 벚꽃 품종의 개량도 이루어져서 품종이 다변화되었고 곳곳에 하나미의 명소도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 도쿄 [[우에노]] 공원이 있는 장소는 에도시대 당시 '우에노 산'이라고 불렸는데 당시에도 이 산은 많은 수의 벚꽃이 식재되어 있어 하나미 명소로 유명하였다. 이 하나미 문화는 일본이 근대화 후 자국 문화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세계 곳곳에 퍼지게 된다. 단지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이 미관상 좋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일본산 벚나무 품종인 왕벚나무(소메이요시노)를 수입해와서 공원을 조성한 경우도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