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법폐개혁 (문단 편집) === 미국 정부 내부의 갈등 === 한편 미국 정부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미국 국무장관 코델 헐과 재무장관 헨리 모겐소는 중국을 도와주자는 데는 입장을 같이 했으나 모겐소는 차관이나 장기신용을 제공하여 중국의 신통화를 달러에 연계시키자고 주장했지만 헐은 국민정부의 행정력이 충분하지 못하며 일본을 자극할 우려가 있으니 국제적인 원조를 통해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겐소는 이에 대해 미국이 중국을 돕지 않으면 미국이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할 것이라며 국무부의 대일 유화정책을 비판했다. 모겐소를 비롯한 미국 재무부는 동아시아에서 일본 엔, 미국 달러, 영국 파운드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달러가 이기기 위해서는 중국을 달러권에 끌어들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1934년 12월 모겐소는 재무부의 독자적인 중국원조를 구상하였다. 어쨌거나 최종 결정권자인 루스벨트는 모겐소에게도 헐에게도 동조하지 않고 아직 관망할 때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미국의 대중 정책은 뚜렷한 방향을 내놓지 못했다. 1935년 [[2월 5일]] 쿵샹시는 미국의 은 구입정책이 중국의 대외무역을 망치고 있으며 [[공산주의]]를 진압하는 국민정부의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고 호소하며 1년 내에 중국이 미국에게 2억 온스의 은을 판매하겠다고 제안하며 금본위제 대신에 중국의 신 화폐와 미국 달러를 연계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모겐소는 큰 관심을 보이고 중국 대표를 워싱턴에 초청하고자 했으나 헐은 회담이 실패할 경우 미국의 은 구입 정책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 여겨 반대, 결국 회담은 무산되었다. 1935년 2월 28일 루스벨트, 헐, 모겐소의 3자회담이 열렸지만 루스벨트는 이 문제에 대해 재무부에 일임하겠으나 2개월 동안 국무부가 관할한다는 견해만 밝혔다. 이에 모겐소와 헐은 서로가 대통령의 지지를 받았다고 여겨 더욱 대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