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법궁 (문단 편집) === 조선 초 인식 === 정궁이 곧 법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정궁과 법궁은 엄연하게 다르다. 그 근거로는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조선)|세종]]이 [[임영대군]]의 집으로 이어하면서 [[동궁]]인 [[문종(조선)|문종]]이 법궁인 [[경복궁]] 경내에 어디에 머물고 세종을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세종대왕의 직접적인 지시사항에 관한 내용이다. >"강녕전(康寧殿)·만춘전(萬春殿)·천추전(千秋殿)·연생전(延生殿)·경성전(慶成殿)·사정전(思政殿) 같은 것은 이른 바 정궁(正宮)이고, 함원전(咸元殿)·교태전(交泰殿)·자미당(紫薇堂)·종회당(宗會堂)·송백당(松栢堂)·인지당(麟趾堂)·청연루(淸燕樓)는 내가 세운 자그마한 집인데 정궁(正宮)이 아니니" >---- > 《세종실록》 세종 31년(1449) 6월 18일자 첫 번째 기사 세종은 임금의 침소인 [[경복궁 강녕전|강녕전]]과 그 부속건물을 정궁, 강녕전 뒤에 있는 중전의 침소인 [[경복궁 교태전|교태전]]과 그 부속건물은 정궁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현대용어로 바꾸어 설명하면, 법궁인 경복궁 안의 왕의 관저(강녕전)와 집무실(사정전) 권역이 정궁, 그 외의 궁궐 공간은 정궁이 아니라는 뜻이다. '법궁'은 그 나라 국가의 근간이 되는 단 하나의 궁이다. 따라서 정궁과 법궁은 아예 다른 개념이다. 조선의 법궁은 [[경복궁]]이었고, 이런 인식은 왕조 초기부터 말기까지 이어졌다. 임진왜란 이후 270여 년간 경복궁이 중건되지 못했어도 조선의 법궁은 여전히 경복궁이었고, 조선왕조나 대한제국을 통틀어서 임금이 경복궁을 법궁의 지위에서 혁파한다고 명령을 내린 적은 없었다. 오히려 조선 후기에 경국대전을 고쳐서 경복궁을 지키는 관직을 병조 산하에 신설하여서 유지하였고, 내부 건물은 고종 전까지 복원하지 못하였어도 궁장은 계속 수리하고 유지했다. 대표적인 예로, 문소전[* [[태조(조선)|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신의왕후 한씨]], [[태종(조선)|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원경왕후 민씨]]의 위패를 모신 전각.] 터를 조선왕조 후기 역대 왕들이 참배하고 추모식을 거행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 후기의 창덕궁은 정식 법궁인 경복궁을 대행하는 임시 법궁이자, 임금이 거처하고 집무를 보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정궁일 뿐 조선 후기의 법궁이 아니다. 창덕궁은 조선 후기의 경복궁과 동급으로 법궁이 될 수는 없다. 비록 창덕궁이 임진왜란 이후로 사실상 법궁 노릇을 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법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의 창덕궁을 가리키기 적절한 단어는 바로 임금이 주로 사용하는 궁이라는 의미로 '정궁'이다. 조선 국초에 경복궁 터를 잡고 나서 좌묘우사 즉 좌쪽에는 종묘를 우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하고 그 사이에 육조거리를 설치하는 것이 동아시아권역에서의 법궁의 배치도와 법궁이 위치한 곳의 도시기본계획이었다. 만약 조선 후기에 창덕궁이 정식으로 조선의 법궁이 되었다면, 종묘와 사직단을 창덕궁이 위치한 곳을 중심으로 이전하여 새롭게 설치해야 함은 물론이고, 법궁은 정문으로부터 법전까지를 일직선으로 하여 법전이 남면을 향하도록 하는 성리학적인 이념에 맞추어서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인정전과 인정문과 일직선이 되도록 배치해야 한다. 하지만 조선은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창덕궁은 경복궁의 이궁으로 자유분방하게 건축되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새로운 법궁이 들어섬은 새로운 국가가 들어섰음을 의미한다는 것이 당시의 이념이자 생각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 본궐인 만월대를 법궁의 지위에서 혁파하고, 한양으로 천도를 하면서 경복궁을 제일 먼저 자리잡은 것만 보더라도 법궁을 새롭게 선포한다는 것은 새로운 국가의 창설을 의미한다. 선조와 광해군 이후로 창덕궁이 법궁의 지위에 있었다고 한다면, 선조와 광해군 이후의 왕들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부정하고 자신들이 새롭게 왕조를 창설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성리학적 지배이념의 시대를 살던 왕과 신하와 백성들이 몰랐을 리가 만무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