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법궁 (문단 편집) == 법궁과 별궁, 이궁 == 법궁 구조는 동서양 모두 예법에 따라 딱딱했기 때문에, 실제로 생활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불편함을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위에 언급했듯이 [[별궁]]이나 이궁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공식적으로 [[튈르리 궁전]]과 [[루브르|루브르 궁전]]이 정궁의 역할을 하던 [[프랑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파리(프랑스)|파리]]에 멀쩡히 잘 있는 정궁을 냅두고 굳이 그 위성도시에 [[베르사유 궁전]]을 축조하여 살았던 건 이런 이유다. 그래서 [[프랑스 대혁명]] 때 파리 시민들이 요구한 내용 중의 하나가 [[베르사유]]에 있는 왕실더러 튈르리 궁전으로 환궁하라는 것이었다. [[러시아 제국]] 역시 [[겨울궁전]]과 [[여름궁전]]을 두었으며, 중국 또한 마찬가지여서 명나라와 청나라 역대 황제들은 딱딱한 자금성에 지내기보다는 주변 황궁에서 지냈다. 특히 청나라의 경우 다중수도와 비슷하게 여러 지방에 별궁들을 짓고 북경 자금성에선 1년의 3분의 1만 지냈다.[* 단적으로 [[중난하이]]와 [[자금성]]의 전경, [[창덕궁]]과 [[경복궁]]의 전경을 비교해보면 드러난다. 전자들은 녹음과 목조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어 편안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후자들은 석재 바닥에 목조 건축물이 올라간 모습을 보여주어 삭막한 느낌을 준다.] 대표적인 별궁이 [[피서산장]]이다. [[조선]]의 경우 원래 법궁 [[경복궁]]보다는 실제로 생활하기 편한 [[창덕궁]]을 왕들이 선호했으며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소실 후 [[고종(대한제국)|고종]] 때에 경복궁 복원사업을 진행하기 전까지[* 고종 때지만 [[흥선대원군]]의 섭정기간으로 복원 사업 역시 대원군이 주도했다.] 그냥 방치되어 [[광해군]] 때 복원을 마친 창덕궁이 사실상의 법궁 역할을 했다. 위에 언급한 다른 나라 예시와 달리 창덕궁은 경복궁이 없던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도 법궁으로 선포되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광해군 시대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법궁이란 용어의 사용이 좀 혼란스럽게 사용되었는데, 창덕궁을 법궁이라고 선포해놓고서는 광해군은 끊임없이 경복궁을 법궁이라고 지칭하면서 경복궁 복원을 위한 목재와 청기와를 10년 목표로 준비하라는 기록도 보이는 데다가, [[인목대비]] 서궁유폐에 관련된 유생과 신하들의 상소문을 보면 "[[경운궁]]은 법궁입니다"라는 기록도 보인다. 그렇게 되면 광해군 시대에는 법궁이 창덕궁, 경운궁, 경복궁. 이렇게 3곳이나 되는 것이라서 창덕궁을 법궁으로 선포했다는 실록의 기사는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인조반정]]으로 쫒겨난 폐주의 기록을 인조반정 세력이 부정적으로 서술했을 가능성을 감안해야 한다. 보다 자세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번역본 사이트에서 "법궁"으로 검색 후 광해군 시대의 기사를 읽어보도록 하자. 그리고 명나라의 세자책봉교명을 못받고 세자로 책봉되었다는 점과 왕위계승서열에 있지도 않은 능양군이 반정을 일으켜 왕으로 등극한 인조 둘 다 정통성이 매우 약한 군주였다 그러한 정통성 시비에 시달린 군주의 등극과정과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등의 연이은 전란으로 인한 국가기강 해이 및 국가재정 파탄 상태에서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복구하지 못함에 따른 군주로서의 정통성 확립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법궁이라고 말한 것으로 실록의 기록을 이해해야 한다. 광해군과 인조 시기 이후의 실록 기록을 보면, 창덕궁을 법궁이라고 기록한 기록은 거의 보이지 않고, 경복궁을 법궁이라고 말하는 기록이 훨씬 방대하기 때문이다. 법궁이라는 용어와 개념 자체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나왔지만, [[유럽]]을 비롯한 타 문화권에도 군주가 거주하는 정식 궁전과 부수적인 별궁으로 구분하는 경우는 많이 존재한다. [[청와대]] 등 공화국의 [[국가원수]]의 [[관저]]를 간혹 법궁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 관저는 건축 양식상 궁궐과 유사하고, 현대 사회에도 [[국가원수]] 관저가 가지는 정치적 위치가 과거 법궁의 위상에 견줄 만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