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범슬라브주의 (문단 편집) == 개요 == 1830년대에 처음으로 주장된 모든 [[슬라브|슬라브족]]들이 같다거나 모든 슬라브족들이 합쳐서 외세를 막자는 사상. [[독일 제국]]이 [[범게르만주의]]를 이용했다면 [[러시아 제국]]은 범슬라브주의를 이용했다.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뿌리를 뻗음에 따라 유럽에서는 독일 제국, 이탈리아 왕국 등 파편화되어 있던 국가들이 통일 민족 국가를 이루었고 이는 [[발칸반도]]에도 영향을 미쳐 [[슬라브]]족 역시 슬라브 민족으로 이루어진 독립 국가에 대한 열망을 품었다. 이에 따라 발칸반도에 강한 영향을 끼치던 [[오스트리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대한 불만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같은 슬라브족이자 발칸반도와 [[중앙아시아]]로의 세력 확장을 노리던 러시아 제국에게는 하나의 기회로 작용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발칸의 슬라브족이 독립 국가를 이루면 그만큼 경쟁자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나 [[오스만 제국]]이 약화되는 것이니 나쁠 게 없었다. 자신의 세력권에 편입시키면 발칸반도의 자원이나 지중해와 아드리아해로의 진출로를 확보할 수 있어서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하다 못해 [[완충국]]으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하게 해도 나쁠 게 없었다. 세르비아는 범슬라브주의를 근거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와 마케도니아 등을 아우르는 대세르비아를 주장했고 이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탄생으로 실현되었다. 불가리아는 [[냉전]] 시대에 슬라브족 국가인 유고슬라비아와 합치는 '대유고슬라비아'를 구상하기도 하였다. 다만 오스만 제국은 몰라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의 슬라브족- 보헤미아 왕국(현 체코, 슬로바키아)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등은 이를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20세기의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경제나 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대국이었으며 겉으로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전제군주제 국가였지만 느슨한 관행( Schlamperei, 슐람페라이)에 따라 실제로는 언론과 종교, 집회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당시 유럽은 물론 전세계를 통틀어봐도 굉장히 자유롭고 개방적인 국가였다. 그에 반해 세르비아는 영토는 물론이거니와 경제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1/20 수준에 불과한 조그만 소국에 불과했고 문화나 복지등 여러 분야에서 후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니 같은 슬라브 민족이고 자시고 세르비아로의 편입에서 매력을 느낄 턱이 없었다. 대신 슬라브족 정치인들은 '친오스트리아슬라브주의'를 주장했는데 이는 혼란스러운 발칸반도의 현실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대신 정치와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의 광범위한 자치를 얻어내고 최종적으로는 보헤미아인이나 크로아티아인 등 슬라브 민족이 독일-오스트리아인과 헝가리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일종의 연방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한편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나타난 [[범게르만주의]], [[튀르키예]]에서 나타난 [[범투란주의]][* 다만 범투란주의는 오스만에서 처음 나타난 게 아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와의 대립, 분쟁도 나타났다. 범슬라브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탄생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유고슬라비아가 내전으로 붕괴되면서 실패했다. 더불어 범슬라브주의는 냉전 시대의 [[소련]]처럼 [[러시아]]가 [[동유럽]]을 지배하기 위해 써먹는 이념이 되어서 동유럽에서 [[반러]] 감정과 대립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