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번쾌 (문단 편집) == 성격 == 성품은 과묵하면서도 타인에게 의지가 되며, 거칠어보이는 외면과는 달리 믿음직하고 예와 의리를 중시하는 협객 기질이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또한 미천한 출신과는 다르게 언변에서도 설득력이 있어서 향락에 빠진 유방이나 홍문연에서의 항우가 반박하지 못했다. 후대의 사가들은 그를 평가할 때 백정에게서 선비의 품격이 느껴진다고 칭찬하였다. 성품이 매우 강직하고 충직하기로 잘 알려져 있다. 더불어 가정적으로 자상한 남편이기도 했는데, 번쾌와 여수는 사이가 매우 좋았다. 그래서 여수는 나중에 번쾌를 압송한 [[진평]]을 증오하여 그를 죽이고자 헛소문을 퍼뜨릴 정도였다.[* 하지만 진평은 번쾌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호송(마침 유방이 죽어간다는 정보가 있었기에)하였으므로 이는 번지수를 잘못 잡은 원한이었다. 김태권은 한나라 이야기에서 진평이 이런 것이 자칫하다가 번쾌를 죽이거나 기분 상하게 할 경우, 여수나 여후에게 자신이 분풀이로 당할 것을 우려해서라고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여후는 이 일로 진평을 핍박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수 혼자만 괜히 열받아서 날뛴 것.] 식견과 무예 양쪽에서 출중했던 초반의 모습에 비해서 통일 이후엔 반란을 일으킨 [[노관]]을 잡아오라고 보냈더니 그대로 놓아주거나 여수가 억하심정으로 [[진평]]을 핍박하는 것을 방치하거나 [[흉노]]를 토벌하겠다며 조정을 선동하는 등 태도가 곧다기보단 그냥 공사구분을 못하는 모습을 수시로 보이기도 한다.[* 당시 노관이 반란군 수괴였는데 이런 노관을 사적으로 놓아주었다면 꽤 문제있는 행동이고, 여수가 진평을 핍박한 건 유방 사후부터 조참의 죽음까지 무려 5~6년간 이어진 집요한 괴롭힘이었는데 번쾌는 죽을때까지 이 문제에 어떤 참견도 한 정황이 없다. 흉노 정벌 운운은 다른 문제도 있는데, 혜제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끼리 이만한 중대사를 날치기로 정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영포의 난 당시엔 황제인 유방의 지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며 유방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번쾌가 이때 와선 이랬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좀….~~직접 현장에서 영포의 용병술을 목격했기에 두려워한 듯~~ 하지만 본래 순박한 성격이던 번쾌가 이런 정치싸움에 적응을 못한 것이라 보인다. 이미 죽음을 당할 뻔하기도 했고 오로지 여후의 매부라는 이유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니만큼,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 살아간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