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번진 (문단 편집) == 번진과 [[절도사]]의 등장 == 한 개 진이 많아도 1천명을 넘기지 못했던 진수제에 반해 군진제하에서의 각각의 군진은 최대 1만여 이상에 달하는 강대한 방위부대들이었다. 그러나, 당이 직면한 방위압력은 심지어는 이것으로도 막아내기 쉽지 않았다. 초당 이래 [[부병제]]의 붕괴와 기미체제의 실패로 당 주변의 민족들이 중흥하면서 당 중기의 주적이라 할만한 [[토번]]이나 [[돌궐]] 모두 한 정면에 십여만 이상을 투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며, [[발해]]나 [[거란]] 등도 당과 싸울 때면 수만 이상의 대군을 투입하곤 했다. 이런 강대한 외적들의 침공을 1만단위 단위부대가 막아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온 것이 '번진' 이다. 즉 여러 군진을 하나로 묶어서 '번진'으로 칭하고, 그것을 지휘하는 직책인 [[절도사]]가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절도사는 [[당예종]] 시기부터 등장했으며, [[설인귀]]의 아들인 [[설눌]]이 첫 절도사로서 그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있다. 절도사는 [[율령제]]의 예외적 관직이었다. 이는 당의 율령제가 [[수나라|수]]의 그것을 대부분 이어받았으며, 수나라가 시행한 군제개혁의 핵심이 [[군령권|군령]]과 [[군정권|군정]], 지방행정의 분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에 역행하는 절도사가 율령제와 맞지 않는 관직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인 필요에 따른 것이었으며, 천보연간의 10 절도사들의 창설 시기는 모두 해당 지역의 군사적 압박이 심화되었을 때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면 절도사직의 창설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절도사들은 평시에는 해당 지역의 군진들을 총괄 관리 감독하고, 전시에는 자의적으로 이들을 이끌고 전장에 나섰으며,[* '군정과 군령의 결합이다.] 군진들이 존재하는 여러 [[주(행정구역)|주]]의 지방행정관으로써[* 보통은 '채방사([[관찰사]]'를 겸했다. 채방사는 당의 최고 광역 행정구역인 '[[도(행정구역)|도]]'단위의 행정감찰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제도안찰사를 계승한 직책이다.] 지방행정을 살피고, 또한 단련사직까지 겸하여 지방행정 및 후방의 단련병들의 통솔권도 가지고 있었다.[* 군령, 군정과 지방행정의 결합이다.] 거기다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제한적이나마 외적에 대해 약간의 외교권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군사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그 힘은 거의 [[군벌|해당지역의 군주]]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안사의 난]]을 시작으로 이러한 절도사직이 내지에도 설치되면서 관할하는 주의 영역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변경지역의 경우 보통은 두세개 주의 변경만을 관할했었으나 내지화되면서 그 관할 영역은 십여개 주 이상 되는 절도사들마저 종종 생겨난다. 이를 구분하여 변경번진과 내지번진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