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번개사업 (문단 편집) === 번개사업, 그 이후 === 이렇게 번개사업은 성공을 거두었다. 여러 질곡을 겪었지만 어쨌든 성공적인 결과를 얻고, 무기 국산화의 길을 연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어지는 또 다른 사업이 극비리에 진행된다. 71년 12월 24일, 실사격 시연이 끝난 후, 당시 사업 책임자였던 오 수석이 구상회 박사에게 대통령의 극비 명령으로 [[백곰#s-2|백곰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주요 내용으로는 독자적인 국산 무기 개발체제를 확립하고 지대지 유도탄을 개발하되, 1단계는 1975년 이전 국산화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미사일 개발 과정 중에 "미사일 자료가 없어서 합참 정보국에 연락하여 자료를 구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후 미국과 유럽에 주재하는 무관들이 그곳 잡지와 일간지에 난 유도탄 관련 기사를 보내줬는데, 별 도움은 안 됐지만 그 성의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는 카더라가 있다. 그러나 이후 백곰사업은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전두환이 집권하고 대번에 짤라버린다. 혹자는 이 번개사업을 한국식 [[공밀레]]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ADD가 설립된 이후 (알려진) 최초의 사업이고, 그 과정 역시 매우 [[하드코어]]했으니 말이다. 또한 번개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무기 국산화의 길을 열었지만, 반대로 비판도 받는다. 높으신 분들에게 '[[제로경|시간과 예산을 덜 줘도]] 아랫사람들은 까라고만 하면 [[니트로 박사|까내주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버린 좋지 못한 선례라는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