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제 (문단 편집) === 언어 ===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초기 고구려계 유이민들의 영향으로 고구려계 언어를 썼을 것이고, 충청도, 전라도까지 영토가 넓어지자 마한어까지 혼용되어 후대로 갈수록 마한계 언어적 성향이 짙어졌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일단 6세기 중국의 문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 >지금 언어와 복장이 고구려와 대략 같다. >---- >《[[양서(역사책)|양서]]》 권54 〈열전〉 48 제이(諸夷) 중국의 사서인 《[[주서]]》에 의하면, 백제의 귀족들은 왕을 '어라하'(於羅瑕)라고 불렀고, 백성들은 '[[건길지]](鞬吉支)'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것을 이유로 백제의 지배층들은 부여계 언어를 사용했고, 백성들은 한(韓)계 언어를 사용했으므로, 백제는 지배층들과 백성들의 언어가 서로 달랐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하지만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김승학은 해당 기록이 거리가 매우 먼 중국 기록이며 또한 중국의 기록에 단 한번 나오고 있어 진위가 의심스럽고 백제의 지배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일본 야마토 정권에서는 백제의 왕을 전부 "코니키시"(건길지)로 부르고 있어 백제의 왕족과 지배층들도 자신들을 "건길지"라고 부른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김승학은 건길지 또한 거서간과 같은 "간"의 호칭이며 신라의 "간"의 경우 일본에서 "간기"라고 불렸기 때문에 건길지는 백제어로 "간"의 발음이 "건"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여 백제, 신라 모두 삼한으로서 "간"에서 나온 호칭으로 불렸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신하들은 왕을 주상, 전하로 불렀고 백성들은 나랏님, 임금님으로 불렀으므로 왕을 일컫는 어휘만 보고 언어가 다르다고 속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한편, 백제가 망한 후 일부 왕족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자신들의 성씨를 '''코니키시'''라고 했다고 한다. 코니키시는 건길지의 일본식 발음으로, 어라하와 건길지의 구분이 그렇게 확연하지 않았거나 후대에 들어 모호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백제인들의 인명, 백제의 지명을 통해 백제어를 유추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명으로 그 나라의 언어를 연구하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학자들이 많다.[* 지명이 가진 특성 중 하나가 바로 보수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외국의 사례만 봐도 런던(London)은 고대 로마 시기의 론디니움(Londinium)에서 파생되었으며, 중동 지역의 많은 오래된 도시들의 지명이 옛날 지명을 그대로 따서 쓰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반도 중부의 고구려 지명들은 오히려 기존 마한 토착 세력들이 쓰던 지명을 그대로 썼을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지명을 가지고 고대 언어를 연구하는 것에 회의감을 나타내는 학자들이 많다.]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백제 목간이 발견되었는데, 서울시립대 국어국문학과 김영욱 교수는 이를 근거로 백제의 향찰이 신라보다도 이른 시기에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515682|#]] 서울대 언어학과 이승재 교수는 '목간에 기록된 고대 한국어'라는 서적에서 猪耳라는 목간 기록을 다루며 耳가 음을 빌려 말음을 표기한 것이 아닌 훈독자였을 것으로 보고 '돝귀'라고 재구하는 설을 지지하였다. 다만 확실한 가설은 아니므로 현재 교육과정에는 백제가 신라와는 달리 '말음 표기'를 하지 않았다고 소개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