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인엽 (문단 편집) ==== [[선인학원]] 비리 ==== 예편 후 교육계에 투신한 백인엽은 자신의 이름과 형 백선엽 장군의 이름을 딴 사학재단인 '[[선인학원]]'을 만들었는데, 그 규모가 가히 엄청났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까지 한정으로 [[인천광역시]] 출신인 사람들은 [[선인학원]] 또는 [[선인재단]]이라는 이름을 선명히 알고 있으며 지금도 인천지역 택시 기사들에게 "선인재단 정문으로 가달라"고 하면 정확히 선인고/인화여고 정문 앞에 택시를 세워줄 정도로 지역민들에게 잘 알려진 학교법인이었다. 선인학원은 1980년대 당시 아시아 최대의 사학 재단으로 유명했는데, 1980년대 초반 당시 재단 산하 학교에 진홍유치원, 효열국민학교(이상 현재 폐교), [[선인중학교]], [[인화여자중학교]], [[https://ko.wikipedia.org/wiki/선화여자중학교_(부산)|선화여자중학교]], [[선인고등학교]], [[https://ko.wikipedia.org/wiki/인화여자고등학교|인화여자고등학교]], [[https://ko.wikipedia.org/wiki/인천체육고등학교|인천체육고등학교]][* 2012년에 [[청라국제도시]]로 이전하였다.], 선화여자상업고등학교(현 [[인천비즈니스고등학교]]), 운봉공업고등학교(현 [[인천대중예술고등학교]]), 운산기계공업고등학교(현 [[인천소방고등학교]]), 항도실업고등학교(현 [[인천전자마이스터고등학교]]), [[인천전문대학]](현재 인천대학교에 통합됨), [[인천대학교]]가 있었다. 속칭 마징가 제트 체육관으로 유명한 구 [[선인체육관]] 주변(구글 어스로 북위 37도 28분 17초 동경 126도 39분 21초 주위)을 중심으로 해서 재단 소속 학교들 거의 전부가 소속되어 있었다. 오죽 하면 1980년대 초까지 인천지역 중학생과 고등학생 중 4분의 1 정도는 선인학원 계열 학교에 다닌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학교의 숫자가 어마무시하게 많았다. 참고로 저기서 진홍 유치원의 진홍은 당시 백인엽의 아들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효열국민학교의 효열은 백선엽 백인엽 형제의 어머니인 방효열 여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실제로 백선엽은 6세, 백인엽은 3세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선인은 형제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고, 선화와 인화 역시 형제의 이름 앞글자와 꽃 화(花)자를 합친 것이다. 운봉과 운산 역시 각각 형제의 [[아호]]에서 교명을 따왔다(운봉이 백인엽 본인의 호이고, 운산은 형 백선엽의 호이다). 그런데 재단 운영이 개막장 오브 개막장이어서, 인천 지역 고교 평준화 이전 선인고등학교는 인문계임에도 불구하고 수준 이하의 학생들만 득실대었다. 여기에 견줄 만한 사람은 [[서남대학교]]로 악명높은 [[이홍하]]나 [[상지대학교]]를 [[개판]]으로 운영했던 [[김문기(정치인)|김문기]], 민립대학인 [[조선대학교]]를 사유화했던 [[박철웅]] 정도이다. 그 악평은 평준화 이후에도 지속되는 선인재단의 운영 속에서 여전히 이어졌으나, 공립고등학교가 된 이후에는 수준이 완전히 달라져서 신흥 명문고가 되었다. 아무튼 [[막장]] 선인재단의 전설은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도봉산'''으로 불리던 악명높은 항도, 운봉, 운산 라인은 수십 년이 지난 현재도 악명이 자자하다. 결국 인천대학교와 선인고등학교 모두 막장의 극을 달리는 운영 끝에 1994년, [[인천광역시|인천직할시]]에 흡수되었다.[* 원래는 5공 초기에 인천시에 흡수될 예정이었으나, 백선엽 자신이 직접 관선이사가 되어 백인엽을 서류상으로만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조건으로 국공립화를 막았다.] 인천대학교는 2013년에 [[국립]]이 되었고, 나머지 학교는 [[공립]]들이 되어서 지금은 선인재단 따위는 없다. 사실 월간조선에서 백인엽을 취재한 이유도 바로 이런 학내 분규의 해결 때문에 기획했다. 그렇지만 인천 사람들에게 선인재단이라는 단어는 남아 있다. 물론 그것도 아주 안 좋은 이미지로··· 저 동네 저 시절에 근처 고등학교를 나왔거나 또는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백선엽'과 '백인엽'은 똑같은 존재다. 오죽하면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백인엽은 '''나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감옥에 가는 사람'''이라고 했을 정도다. 물론 무슨 민주투사 같은 건 아니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사회기강 정리 차원에서 반드시 혼내주고 넘어갈 정도로 유명했다는 이야기. 백인엽의 막장 행각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보도한 언론 매체가 바로 [[월간조선]]. 그것도 북한 핵개발 문제로 시끄러울 때라서 나름 [[북한]]에 대한 비판이 매서운 시기였다. '''그 월간조선'''이 그럼에도 백인엽의 막장 행각을 상세하게 취재해 보도할 정도로 재단 운영을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했으며 그로 인해 당시에도 비난을 무수히 받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월간조선은 사학 비리 비판은 1도 없이 [[상지대]] 구 재단 [[김문기(정치인)|김문기]] 이사장을 [[문민정부]]의 민정계 표적수사 희생양이라 미화할 정도로 극우화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