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범일지 (문단 편집) == 기타 == 김구가 직접 쓴 백범일지 친필 원본은 1997년 6월 12일에 '백범일지1929년(상권)1943년(하권)' 라는 명칭으로 [[대한민국의 보물|보물]] 제1245호로 지정되었다. 다만, [[김구|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지난 [[1999년]] [[6월 26일]] 이후로는 그 내용에 [[저작권]]이 [[퍼블릭 도메인|적용되지 않는다.]] '나의 소원'은 상편과 하편 이후에 나왔다고 한다. 여기서 제목을 따 온 독서 감상문 쓰기 대회도 2005년부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에서 개최되고 있다.[[http://m.dongpo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2679|기사]] 좌파 시민운동가 김상구 씨가 쓴 책 ‘김구 청문회’에서는 기본적으로 ‘백범일지’를 역사적 [[사료(역사)|사료]]로서 가치가 매우 떨어진다고 판단하였다. 저자는 “[[자서전]]은 본래 과장될 수밖에 없다. 90% 이상 거짓으로 본다”며 “백범을 우상화하면서 백범일지의 내용이 모두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진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로 [[치하포 사건]]에 대해 백범일지는 피해자 쓰치다를 일본 육군 중위라고 해 마치 [[을미사변|국모살해]]의 원수를 갚은 것으로 표현했지만, 당시 김구를 심문했던 관헌 문서와 언론에는 쓰치다가 일본 상인으로 나온다. 이런 주장에 도진순 창원대 교수[* ‘쉽게 읽는 백범일지’와 ‘백범일지(이상 돌베개)’ 주해본의 저자]는 ‘김구 청문회’의 내용과 관련 “1∼2개 사례로 침소봉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도 교수는 국내 백범 연구 권위자로 백범학술원 연구위원을 한 바 있다. 그는 “백범이 광복 직후를 제대로 읽지 못해 정치적으로 밀렸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면서도 ‘친일파가 만든 독립영웅’ 이라는 ‘김구 청문회’의 주장에 대해 “작위적이고 난폭한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문화일보 2014.8.6 기사 “백범일지 일부 과장에 침소붕대로 독립운동 폄훼”김상구 ‘김구 청문회’ 출간… 백범 전문가 도진순 ‘반박’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80601032530017002|#]]]하지만 도진순도 쓰치다가 군인이 아닌 점, 백범일지에는 젊은 날 청나라에 1번 갔다고 했지만 실제로 다른 기록을 보면 2번 갔던 점 등 사실관계에 오류는 인정하고 있다. [[느낌표(MBC)]]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서 2002년 5월 선정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나의 소원' 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2000년대 이후 [[한류]]가 국제적으로 각광받으면서 인터넷 상에서 종종 인용되기도 한다. 한류가 김구가 주장하는 '문화의 힘', 즉 [[소프트파워]]를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부분은 해방 이후 김구의 의뢰로 한자로 쓰여진 백범일지를 한글로 첨삭해 [[윤문]]한 [[친일파]] [[이광수]]가 [[메이지유신]]을 참고해 썼던 자신의 글에서 따와 추가한 내용이라는 주장이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53317|#]] 한반도가 일제의 지배에서 독립하면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은 노예가 되고 군주나 기타 개인 독재자의 독재는 그 개인만 제거되면 그만이지만 다수의 개인으로 조직된 한 계급이 독재의 주체일 때에는 이것을 제거하기 어렵고 이러한 독재는 그보다도 큰 조직의 힘이나 국제적 압력이 아니면 무너뜨리기 어려움을 경고하고 독재 중 제일 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인데 조선은 유교, 그 중에서 주자학파의 철학을 기초로 수백년의 양반 계급 독재를 이어오며 정치 뿐만이 아니라 사상, 학문, 사회생활, 가정생활, 개인생활까지 규정하며 통제했고 조선 5백년 동안 주자학만 붙들다가 민족문화와 정기가 죽었고 이 때문에 새로운 사상과 경륜이 생겨나려고 해도 유교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문난적이라고 짓밟히며 빛을 보지 못해서 예술, 경제, 산업까지 쇠퇴하여 망한 나라였다고 비판하며 언론의 자유가 있어야 새로운 사상과 경륜이 태어나며 진보한다고 강조했다.[* 여담으로 공산주의는 이러한 독재정치 중에도 가장 철저한 것이며,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극단으로 발휘하고 마르크스의 학설을 최후의 것으로 믿어, 공산당과 소련의 법률과 군대와 경찰의 힘을 한데 모아서 마르크스의 학설에 조금이라도 반대는 고사하고 비판만 하는 것도 엄금하여 이에 위반하는 자는 죽음의 숙청으로써 대하니, 이것은 조선의 사문난적에 대한 것 이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북한은 이 견해처럼 [[조선로동당]]과 [[주체사상]]으로 독재국가가 되었다.][[http://www.davincimap.co.kr/davBase/Source/davSource.jsp?Job=Body&SourID=SOUR001340|백범일지 0.2.정치 이념]] 일제강점기의 한인애국단의 활동, 그 중에서 윤봉길의 훙커우 사건과 이봉창의 사쿠라다몬 사건에 대해 테러 운동[* 사전적인 의미로서.]이라고 언급하였다.[[https://www.aladin.co.kr/shop/ebook/wPreviewViewerNew.aspx?itemid=194041403|백범일지 하권 머리말]] 현재 보편적으로 읽히는 판본은 도진순 주해본이다.[[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71992258&orderClick=LAG&Kc=|#]] 원문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사실관계와 다른 것은 주석을 달고, 비문, 고어 같은 것은 손을 봤다고 한다. 1946년 국사원 초판을 그대로 인쇄한 영인본 버전도 있다.[[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85959146&orderClick=LAG&Kc=|#]]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