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년전쟁 (문단 편집) === [[백년전쟁/제3기 (1415-1431)#s-3|오를레앙의 처녀]] (1429~1431) === [[파일:Contemporaine_afb_jeanne_d_arc.jpg |width=250]] >여기저기서 흔히 보고되는 것처럼, 자신을 장느 라 퓌셀이라고 불렀던 그 여자는 거짓 예언자로서, 신의 섭리와 자신의 성별에 반하여 두 해 이상 남자 옷을 입었으며 이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 우리의 주적에게 가서 그의 당파에 속한 성직자, 귀족, 평민들과 함께 자신이 주님의 사명을 받았다고 여러 번 주장하고, 오만하게도 성 미카엘과 천국의 많은 천사와 성인들, 그리고 성 카타리나와 성 마가렛과 자주 개인적이고 명백한 교제를 했다고 자랑했다. 또한 마치 기사와 향사들처럼 갑옷을 입고, 전투 깃발을 세우고, 매우 큰 악의와 자만과 오만으로 가장 고귀하고 우수한 프랑스 왕의 문장기를 요구하고 얻어내 많은 전투와 포위전에서 그것을 직접 휘둘렀고... 그런 모습으로 그녀는 전장에 나가 군인들을 이끌고 큰 부대를 지휘하여 살상을 하고 광범위한 소요와 혼란을 일으켰으며, 그들을 위증과 반역과 거짓되고 미신적인 믿음으로 선동했고, 평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방해하고 죽음의 전쟁을 다시 일으켰으며, 많은 이들에게 성스러운 여성으로 숭배받고 존경받는 것을 즐겼고, 그밖에 너무 많아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저주받은 일들을 저질렀으며, 이는 많은 곳에서 거의 모든 기독교도들에게 큰 불쾌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 >1431년 6월 잉글랜드 정부의 포고문 오를레앙 주둔군이 출격해 잉글랜드 보급대를 습격하지만 격퇴당한다. 이 패배로 프랑스군의 사기가 크게 저하된다. 잔 다르크가 프랑스군 보급대와 함께 오를레앙에 입성한다. 잔 다르크의 리더십 하에 프랑스군은 잉글랜드군의 오를레앙 봉쇄를 성공적으로 깨뜨린다. 파테 전투에서도 프랑스군이 잉글랜드군을 크게 격파한다. 이 승리는 프랑스군의 사기를 크게 높인다. 야전군의 큰 손실로 잉글랜드군이 재배치되는 동안 프랑스군이 트루아를 포위하고 점령한다. 이 승리는 랭스로 가는 길을 열어주어 샤를 7세의 대관식이 랭스에서 치러진다. 잔 다르크가 왕명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파리를 공격하지만 실패한다. 잔 다르크는 부상을 입고 프랑스군은 퇴각한다. 프랑스군이 센강과 마른강의 요충지를 점령하자 시민들이 봉기해 잉글랜드군을 축출한다. 부르고뉴군이 콩피에뉴를 포위하고, 잔 다르크가 포로로 잡힌다. 이후 콩피에뉴 수비군은 포위를 견디며 승리를 거둔다. 잔 다르크는 결국 이단적인 주장을 철회하지만 얼마 뒤 철회를 취소하고 화형당한다. 잉글랜드군이 루비에를 탈환하고 헨리 6세가 파리에 입성해 대관식을 치른다. 그러나 대관식 행사는 프랑스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엉망으로 치러지며, 프랑스 방식이 아닌 잉글랜드 대관식 절차대로 진행되었다는 루머까지 퍼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