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년전쟁 (문단 편집) === [[백년전쟁/제1기 (1337-1360)#s-2|브르타뉴 내전의 시작]] (1341~1344) === [[파일:Guerre_de_Succession_de_Bretagne_1341.jpg |width=600]] >필리프 왕은 잉글랜드 왕이 최근 브르타뉴에 도착해서 광범위한 약탈과 파괴를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샤를 드 블루아 경이 그에게 지원군이 오지 않으면 모든 마을과 도시가 잿더미가 될 것이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인 노르망디 공작에게 필요한 모든 병력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며, 귀족과 평민들 모두에게 소집령을 내려 왕세자를 따라 브르타뉴로 원정을 갈 준비를 하게 했다. 귀족과 평민 모두의 호응이 너무 대단해서 도로와 경작지가 군사들로 가득 찼다. >---- >장 르 벨의 연대기 브르타뉴 공작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조카를 지지하는 블루아 파벌과 동생을 지지하는 몽포르 파벌의 내전이 시작된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몽포르가 선수를 쳐서 공령의 수도인 낭트 등 요충지를 장악한다. 하지만 몽포르가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필리프 6세는 조카인 블루아를 지원한다. 이에 잉글랜드도 몽포르 파벌을 지원하면서 뒤늦게 내전에 개입한다. 잉글랜드 주력군이 기습적으로 브르타뉴에 상륙해 광범위한 약탈과 파괴를 자행한다. 뒤늦게 프랑스의 대군이 지원을 오지만 블루아 파벌의 저항 의지는 이미 꺾였고 북부 프랑스의 겨울은 대군이 기동하기에는 불리한 계절이었다. 결국 전면전이 일어나기 전에 다시 휴전이 체결된다. 그러나 잉글랜드군이 대부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블루아 파벌이 몽포르를 압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