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국 (문단 편집) === 유럽 === 반면 유럽의 백작은 그 기원이 행정관이다. 왕이 행정구역을 할당하여 다스리라고 임명한 직위를 독립국가 칭호로 쓸 이유가 별로 없는데다가, 보통은 ~~간지~~군주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보통은 [[공작(작위)|공작]]을 자칭하여 [[공국]](duchy)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하다못해 최소한 [[프린스]] 정도는 자칭하여 [[대공국]](principality)이 되었다. 처음부터 백국으로 독립한 경우는, 백작의 주군이 모종의 이유로 패망해서 자의든 타의든 독립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프랑크 왕국]]에서 [[카롤링거 왕조]]가 증발하자, 은근슬쩍 [[카페 왕조]]가 통치하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카탈루냐#s-4.2|바르셀로나 백작령]]이 대표적이며, 그밖에 [[시칠리아 백국]]이나 [[포르투갈 백작령]]도 있다. 이들은 사실상 정식 왕국으로 인정받기 전에 존재했던 과도기 상태로서, 이들 나라 군주들은 마냥 백국으로 남은 게 아니라 독립 직후부터 왕국으로 인정받고자 [[교황]]과 주변국들에게 열심히 어필하였다. 그 결과, 바로셀로나 백작령은 [[아라곤 왕국]]과 [[동군연합]]을 결성하면서 아라곤 왕국에 편입되었고, 시칠리아 백국은 [[시칠리아 왕국]]으로 국명을 바꾸었으며, 포르투갈 백작령은 [[포르투갈 왕국]]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800~1000년 까지 암흑기 봉건사회 유럽에서는 이러한 호족, 귀족 영주들을 위한 칭호가 특별히 통일되어 있지 않았고, 왕권이 추락한 사이를 틈타 지방 일대를 장악한 영주들은 보통 공식 직위인 백작을 계속 자칭했다. 좀 더 세력이 센 호족은 공작, 프린스, 대백작 등 제멋대로 호칭을 정하기도 했다. 저 시기 왕권이 심하게 개판이었던 프랑스는 앞서 말한 개성있는 자칭이 많이 생겼고(...), 비교적 왕권이 살아있던 독일의 경우는 공식 직위인 공작이나 백작, 변경백을 많이 사용했다. 프랑스나 독일이나, 기본적으로 왕의 신하라는 지위 내에서 지방에서 할거하던 호족들이 자칭하던 칭호가 백작이었던 만큼 독립 백국은 드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서양]]에서 처음부터 사실상 독립국으로서 백국이 건국된 사례는 [[십자군 전쟁]] 당시에만 나타났다. 십자군 전쟁 이후에 세워진 백국은 없다. 이것은 우선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귀족이 십자군 국가를 세울 때 스스로 왕이나 공작, 후작을 칭할 수 없어서 유럽 본국에서 자신의 가문이 가지고 있던 작위인 백작 작위를 칭해서였고, 둘째로는 십자군 국가들이 형식적으로는 [[동로마 제국]]이나 [[예루살렘 왕국]]의 봉신으로 행세했기 때문이다. [[에데사 백국]]의 경우 명목 상으로 [[동로마 제국]]의 봉신을 자처하는 동시에 튀르크에서도 책봉 받았으나, 두 세력 중 어디로부터 실질적인 영향도 받지 않은 상태가 유지되어 사실상 독립국이 되었다. 그나마도 이것을 백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백국 통치자의 모국어였던 프랑스어 기준이고, 당시 동로마의 그리스어 기준으로 군주의 칭호는 둑스, 즉 직역하면 공작이었다. [[30년 전쟁]] 이후의 [[신성 로마 제국]] 산하의 몇몇 [[변경백|변경백령]]들 같은 경우, 중앙정부가 아예 의미가 없다시피 해진 상황이므로 독립국으로 간주해서 백국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관점도 있다. 사실 이것도 변경백은 후작으로 번역되기도 해서 후국으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이렇듯 백작령은 봉건제 하에서 기초적인 행정구역이었기에, 영미권에서 흔히 사용되는 행정구역 등급인 '[[카운티]]'가 바로 이 백작령에서 유래했다. 한국으로 치면 시, 군이랑 비슷한 크기. 백작 문서에서도 설명하지만, 백작은 원래 왕이나 황제가 임명한 행정관에 해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