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방언(기독교) (문단 편집) == 신학적 해석 ==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성령의 힘으로 신비한 일을 말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4장 2절 (공동번역) 방언이 하느님에 대한 간구, 개인적으로 하느님과 교통하기 위한 수단임을 성경에서 긍정하고 있다. 다만 여러 사람이 있는 장소에서 할만한 기도라고 보진 않는다. 한국 개신교 교단 중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를 비롯한 오순절교회는 방언이 성령께서 내게 임하신 표적이기 때문에 예배에서 방언 사용을 적극 권장한다. 이외 한국 개신교 주요 교단들은 예배에서 방언 사용을 권장한다, 권장하지 않는다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각 교회에 맡기고 있다. 한국 [[가톨릭]]의 공식적인 입장은 다음과 같다. 천주교주교협의회의 가톨릭대사전 방언 항목을 요약한 글이다. [[https://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view.asp?ctxtIdNum=4475&keyword=&gubun=01|#]] 가톨릭은 방언을 의미있게 생각하지 않고, 경계한다. 과도하게 은사를 받기 위해, 또는 신비 체험을 목적으로 기도하지 않도록, 그리고 조용하게 올바른 신심을 이어나가는 것을 중시한다. 개개인이 하는 방언을 모두 은사며 은총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방언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신앙의 지표나 모범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각 [[교구]]마다 성령쇄신모임에 담당 [[신부(성직자)|신부]]를 배정해 절대 일정선을 넘지 않도록 지도하도록 한다. 올바른 신심의 토대 없이, 단순히 신비로운 체험을 원하는 이유로 이러한 기도를 접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는데, 이는 현대에 소위 말해지는 방언, '신령한 언어'가 천주교의 전통적인 영성이 아니라 20세기에 도입된 일종의 신비체험인 만큼 가톨릭 정통 교리를 벗어나 신비주의적 신앙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그리고 조금 다른 예이긴 하지만 신비체험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기 시작하면 [[나주 성모동산]],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베이사이드]]와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일례로 90년대 말에 성령쇄신운동회를 통해 국내 천주교 내부에 가계치유가 신학적 비판 없이 확산되어 신자들 사이에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고 심지어 사상자까지 나오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긍정적인 요소도 없지는 않겠지만, 은사를 쫓아다니고 거기에 매달리는 기복적 사고를 갖거나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면서 내적 탐욕과 교만에 빠지거나 봉사자들끼리 상처를 주고 받아 물의를 빚는 등 좋지 않은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성령쇄신운동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교회 내부로부터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교회]]는 현대의 방언이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며, 따라서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방언 기도나 성령기도회 같은 것이 없다. 정교회가 이처럼 강경하게 반대하는 근거는 만일 그것이 사도들로부터 내려왔다고 하면 2천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많은 [[교부]]들과 [[성인(기독교)|성인]]들이 이에 대해 언급했을 텐데, 저런 식의 랄랄랄라 거리는 방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 무엇보다 교부들과 성인들이 그런 기도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순절교파에서 방언을 받아야만 성령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로 이미 [[성령]]을 가득히 받으며 성령이 신자들과 영원히 함께 한다고 보기에 강하게 부정한다.[* 이 관점은 [[천주교]]도 동의한다. [[7성사|성사]]의 사효성에 의하여 [[세례성사]]나 [[견진성사]] 등의 성사 때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교회에서도 방언 자체는 인정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도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은총을 받아 [[외국어|다른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지금은 신구약 성경이 완성되어 있기에 공적 계시는 끝이 났고, 성경과 성전을 통해 충분히 하느님의 계시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사실상 사도 시대 때 방언은 제 역할을 잃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본다.[[https://www.goarch.org/-/speaking-in-tongues-an-orthodox-perspective|#]] 가톨릭이든 정교회든 고대에 실제로 있었던 방언의 존재 자체는 인정을 하지만, 그것을 오순절주의의 영향을 받아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로 에베베거리는 소리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인들을 외국인과 대화할 때를 보면 종종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언어로 이야기 하여 대화를 하거나, 혹은 서로가 자신의 모국어로 이야기 하고 서로가 서로의 모국어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통하는 기적이 있고, 교부들 중에도 이러한 기적을 행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주의에 의해 참의미를 잃어버린 방언의 진짜 모습이고 사도들이 처음에 성령을 받아서 행했던 기적의 원모습인 것이다. [[신사도 운동]] 극단주의자들은 마지막 때에 성령이 만인에게 부어진다는 요엘의 예언이 현대에 성취된 것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잘못이다. 첫째, 기독교 신학에서 말세는 예수 승천 이후부터 현재까지이지, 특정 누군가가 방언을 하거나 예언을 하는 시기가 아니다. 만약 말세지말 이렇게 나온다면 말 장난에 불과하다. 둘째, 요엘의 예언은 이미 사도행전 2장에서 성취'되었다'라고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고 신사도 운동에 의해 새롭게 성취된다는 것은 성경 말씀을 가감하는 것이다. 요엘의 히브리어 원문은 나중에, 그때에가 맞지만,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이게 요엘의 예언의 성취다!'라고 말할 때에는 마지막 날, 말세에 로 번역하고 있다. 즉 당시 유대인들이 이해한 요엘 2장 28절의 그때에는 마지막 날이다. 그도 그럴 것이 2장 이후에 회복되는 이스라엘과 모여드는 성도들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류 신학계에서는 현대에 요엘의 예언이 재성취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다만 오순절 방언이 현재에도 유효한가, 즉 오순절에 사도들과 제자들, 그리고 초대교회에 임했던 그 은사는 여전히 우리에게 내려올 수 있는가라는 논의는 견해 대립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