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방송자료 (문단 편집) === 영화 === 현재 [[한국 영화]]의 초기작들은 상당수가 유실된 상태이며[* 특히나 영화 필름들은 [[농부]]들이 쓰는 [[밀짚모자]]의 테두리 등을 만드는데 쓰이느라 잘려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외국의 경우도 [[조르주 멜리에스]]의 초기작 필름들이 [[구두]] 공장에 재료로 팔려나가버리기도 했다.], 1996년 이전까지 영화법상 의무납본제도가 없었던 데다 원본 프린트 보존의 개념도 없어서 해외 [[영화제]] 같은 데에 무턱대고 원본 필름째로 내주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며, [[한국영상자료원]]도 의무납본제 이전에 영화인들로부터 위탁이나 [[기증]] 형식으로 자료를 받았다. [[오발탄(영화)|오발탄]]의 경우 이렇게 유출된 프린트를 해외에서 발견해 [[영어]] [[자막]]을 지우고 복원한 케이스이다. 한편으로 한국 영화 관계자나 영화 팬들은 한국 영화의 마지막 보물창고로 꼽고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평양]]의 [[주석궁]](...)이다. 바로 [[김정일]] 컬렉션이 그것인데, 김정일 생전에 모아둔 그 시절 한국영화 프린트가 매우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하던 초기인 1980년대까지 주력하던 것이 문화 선동 [[프로파간다|선전]] 분야였고 [[신상옥]] 영화감독이나 [[최은희(배우)|최은희]] 배우를 납치할 만큼 남한 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공동경비구역 JSA]] 개봉 당시에는 프린트를 하나 떠서 북한에 선물해주기도 했다. 언젠가 [[남북관계]]가 더 활성화되면 저 아카이브들이 다시 세상 빛을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있지만 [[국제정세]]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아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히가시오사카]]의 원로 영화수집가 아베 요시시게(安部善重)도 [[아리랑(영화)|아리랑]] 같은 [[일제강점기|일제 시기]]의 한국영화들을 소장한다는 소문이 돌아 1970년대부터 몽양 [[여운형]]의 친척 여운각을 비롯해 다큐멘터리 PD 정수웅, [[나운규]]의 차남 나봉한 감독, 호현찬 전 [[영화진흥위원회|영화진흥공사]] 사장, 김연갑 아리랑보존회 회장 등 [[한반도|남북한]]을 막론하고 여러 영화인들과 언론인들이 필름 찾기에 나섰으나, 아베는 여러 차례 갖은 핑계를 대며 반환을 하지 않았으며 1934년작 [[단편영화]] <아름다운 이웃 사랑(隣人愛の麗容)> 정도만 공개했고, <아리랑>의 경우 해당 영화가 적힌 필름 목록만 보여주기도 했다. 2005년에 그가 상속자 없이 사망한 후 그가 지닌 필름 전량이 일본 [[문화청]]으로 넘겨졌으나 조사 결과 해당 영화들은 한 편도 찾지 못했고, 2010년에 김연갑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가 일본국립필름센터에서 아베의 컬렉션을 확인해 본 결과 일제 때 한국 영화는 한 편도 없었다고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