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장전쟁 (문단 편집) == 결말 == 1930년 11월 4일 펑위샹과 옌시산이 모두 하야하고 베이핑 국민정부가 해체되면서 6개월에 걸친 중원대전은 종식되었다. 이 대전으로 중앙군 100만, 반군 60만이 동원되었고 사상자는 중앙군 9만 5천, 반군 20만에 달하였다. 중화민국의 통일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 컸던 셈이다. 하지만 군벌조직이 이것으로 모두 와해된 것도 아니어서 [[장쉐량]], 천지탕처럼 장제스의 편에 섰던 군벌들이나 반장전쟁과 별 관계없던 사천의 [[류샹]], 운남의 룽윈, 신강의 [[성스차이]], 서북의 마가군벌을 비롯한 군벌들을 제외하고도 [[리쭝런]], [[옌시산]] 등은 결국 장제스와 화해하고 다시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장전쟁 승리의 의의는 결코 작은 것이라 할 수 없다. 반장전쟁의 클라이맥스인 [[중원대전]] 이후로는 [[1차 양광사변|두 차례의]] [[2차 양광사변|양광사변]]과 [[복건사변]]을 일으킨 광서, 광동파를 제외하면 그 어떤 군벌도 난징 국민정부와 장제스에게 최소한 군사적으로는 반기를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안직전쟁|걸핏하면]] [[북경정변|베이징의]] [[직봉풍전쟁|주인이 바뀌고]] [[루룽팅]] 등의 남방 군벌은 중앙정부를 아예 개무시하고 외려 반기를 들던 [[북양정부]] 시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정권의 안정성을 이 전쟁의 승리가 가져다주었다는 의미이다. 여하간 국민정부의 위상과 장제스의 권력은 반장전쟁의 승리로 획기적으로 상승했지만 이후 장제스는 약법 제정 문제를 놓고 [[후한민]]과 충돌하다가 후한민을 감금하는 [[탕산 사건]]을 일으켰고 이에 반발한 광동파가 서산파, 개조파, 광서파와 연합하여 [[1차 양광사변]]을 일으켰다. 이 와중에 [[일본 제국]]이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중국 대륙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