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봉사건 (문단 편집) === [[장덩쉬안]]의 죽음 === 한편 궈쑹링이 표적으로 삼은 사람 중 하나인 장덩쉬안은 11월 7일 덕주에서 장쭤린의 명령으로 4방면군 군장으로 임명되었다. 장덩쉬안은 집익교와 진침을 여단장으로 삼아 부대를 이동시키고 자신은 소수 수행원만 데리고 잠시 쉬다 봉천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궈쑹링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몰랐던 장덩쉬안은 전용열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란저우에서 궈쑹링의 참모장 팽진국을 만났다. 팽진국이 정중하게 장덩쉬안에게 말했다. >"궈 군단장께서 지금 감기가 아주 심해 독판을 영접하러 나오지 못했습니다. 궈 군단장은 강 독판을 만나 뵙기 원합니다." 장덩쉬안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동차를 타고 란저우로 들어오자마자 즉각 성냥공장 지하에 수감되었다. 궈쑹링은 장덩쉬안을 만나주지도 않고 즉각 총살하라고 지시했고 병사들이 장덩쉬안에게 성안으로 이동시키겠다는 구실로 차를 태운 후 백사장으로 끌고나와 차가 모래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하여 내리게 한 다음 등 뒤에서 총을 쏘아 죽였다. 궈쑹링은 장덩쉬안을 죽인 후 특별전문을 타전하여 그의 죽음을 알렸다. ||장덩쉬안을 란저우에서 총살에 처했다. 함부로 병력을 남용하여 전쟁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궈쑹링은 장덩쉬안과 사실 개인적인 원한이 좀 있었다. 우선 젊은 시절 허난주의 휘하에 같이 있으면서 둘은 정적 관계였으며 [[2차 직봉전쟁]] 중 궈쑹링이 장덩쉬안과 자신의 부대를 교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장덩쉬안이 반대했다. 이에 화난 궈쑹링은 멋대로 병력을 철수시켰는데 이를 두고 장덩쉬안은 군령을 위반했으니 군법회의감이라고 경극 배우를 흉내내며 조롱하였다. 또한 장덩쉬안은 궈쑹링이 가지고 싶었던 안휘성의 독군을 차지한 전력이 있었다. 궈쑹링은 장덩쉬안의 죽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장덩쉬안은 안휘 독군이 되었다가 사람들에게 쫓겨났지만 여전히 자기의 위치가 확고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동북으로 돌아와 장쭤린을 뵙고 새로운 부서로 가는 것을 도모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바로 내가 평소 역겨워하던 행위였다. 내가 오늘날 동북군을 동북으로 철수시켜 새로운 동북을 건설하려고 하는 즈음 그는 여전히 안휘 독군을 맡을 생각만 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란저우에서 구금하여 죽인 것이다." 하지만 장덩쉬안은 평화적인 사람으로 대인관계가 좋아 봉천군벌 내부에 두루 친한 사람이 많았다. 그런 장덩쉬안을 재판도 없이 총살시켜버리자 봉천군벌의 장령들은 궈쑹링이 개인 원한으로 사람을 쉽게 죽인다 여겨 반감을 품게 되었다. 또한 궈쑹링은 동북군 제5방면군 12군장 겸 열하 도통 감조새, 기병사단장 [[탕위린]], 11군 기병사단장 우침징 등이 자신의 처우에 불만을 품고 궈쑹링에게 가담하고 싶다고 제안했을 때도 자신의 우세에 너무 자신감을 품어 감조새에게 총참의를, 탕위린과 우침징에게 참의를 주겠다고 할 뿐 이들의 포섭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감조새, 탕위린, 우침징 등은 궈쑹링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전력인 장쭤샹의 제5방면군 소속이었으므로, 만약 이들이 궈쑹링에게 합류했다면 장쭤린은 흑룡강의 [[우쥔성]]이 오든 일본군이 오든 궈쑹링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위익삼, 유진동, 고기 등의 측근들이 궈쑹링에게 감조새, 탕위린, 우침징 등에게 큰 보상을 약속하여 이들을 포섭해야 한다고 간언했지만 궈쑹링은 듣지 않고 제4군으로 하여금 봉천과 열하의 감조새와 탕위린 부대를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궈쑹링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여긴 이들은 장쭤린에게 합류했는데 장쭤린은 이들에게 옛일을 묻기는커녕 오히려 더 높은 급여를 약속하였다. 이후 궈쑹링에게 기병 부대의 부재는 엄청난 타격으로 다가왔다. 위익삼은 후에 이렇게 불평했다. >"궈쑹링은 위인이 잘난 체를 잘하며 혼자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너무 성급하게 서둘러 대사를 그르치고 말았다." 또한 추작화를 비롯하여 믿을 수 없는 장령들을 신임했고 훗날 추작화는 불발탄을 지급하는 등 사보타주를 일삼았다. 그리고 장쭤샹의 아들 장정구를 90단장으로 임명하는가 하면 제은명의 아들 제가정도 그대로 두었다. 당연히 장정구와 제가정은 봉천군에 합류하여 반란을 알렸다. 공군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아예 장쉐량 직속부대라서 장쭤린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여 궈쑹링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자마자 전부 다 봉천으로 비행기를 타고 철수해버렸다. 궈쑹링은 3군단 참모처장 팽진국을 보내 공군을 접수하려 했으나 팽진국은 공군 없는 공군 사령관이 될 뿐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