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봉사건 (문단 편집) == 결말 == 궈쑹링의 반란을 진압한 장쭤린은 의기양양하게 다시 북경을 점령하고 공세적 태도로 전환했으나 관동군의 도움으로 반란을 진압한 것 때문에 장쭤린은 친일매국군벌이란 이미지가 매우 고착화되고 말았으며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장제스]]가 [[국민당의 1차 북벌|남방에서 진격해오자]] 북양군벌들을 규합하여 맞섰으나 결국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고 본인도 [[관동군]]의 음모로 [[황고둔 사건]]에서 암살당하고 만다. 이 반봉사건은 장쭤린의 무리한 관내 진출과 더불어 봉천 군벌의 경제를 붕괴시키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고 장쭤린의 뒤를 이은 장쉐량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만만해보이는 소련을 건드려 [[중동로 사건]]을 일으키나 [[바실리 블류헤르]]가 지휘하는 소련군에게 개패듯이 두들겨맞고 몰락하고 뒤이어 [[만주사변]]까지 맞게 되면서 봉천군벌의 멸망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후 궈쑹링이 거느렸던 정예부대는 그대로 장쉐량이 흡수하여 권력기반으로 삼았다. 이들은 궈쑹링이 키웠던 부대였기 때문에 장씨 가문에 대한 충성과 궈쑹링에 대한 충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존재였고 궈쑹링이 망한 뒤에는 그나마 궈쑹링과 친분이 있었고 또 장씨 가문의 후계자라 비호를 받을 수 있었던 장쉐량에게 붙을 수밖에 없었던 것. 이후 만주로 달아나던 장쭤린이 [[황고둔 사건]]으로 폭살당하고 장쉐량 정권이 들어서자 궈쑹링의 부하들은 장쉐량을 도와 궈쑹링의 원수이자 사관파의 거두 양위팅 등을 몰락시키는데 일조했고 봉천군벌의 주도파벌이 되지만 그들도 1931년 [[만주사변]]이 터지면서 같이 쓸려나가게 되고 녹림파가 일본의 주구가 되어 [[만주국]]을 세우게 된다. 결국 엘리트 출신인 육대파와 사관파가 대립하다 둘 다 몰락하고 다시 녹림파가 자리를 차지하게 된 셈. 궈쑹링의 외교처장인 [[인루겅]]은 후에 [[한간]]으로 변절하여 기동사변 등 일본의 중국 침략에 협조하였고 [[중일전쟁]] 종결 이후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궈쑹링의 심복 [[성스차이]]는 일본으로 도주하였고 이후 [[장제스]]에게 붙어 국민혁명군에 합류하였으며 다시 신강성의 지배자로 등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