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봉사건 (문단 편집) === 일본의 개입 === 궈쑹링이 봉기하자 [[일본 제국]]에서는 자신들의 동북에서의 이익이 침해될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에 시라카와 요시노리는 11월 26일 자신의 참모 우라 스미에 중좌를 궈쑹링에게 보냈다. 궈쑹링은 아라키 대위, 키가 소좌 등을 배석시키고 우라와 만났다. 우라 중좌는 반봉에 대한 생각을 바꿀 것을 위협적으로 요구했지만 4시간 반 동안의 회의 끝에 궈쑹링의 생각을 전혀 바꿀 수 없었다. 결국 우라 중좌는 궈쑹링의 군사 행동에 대해 일본의 여러가지 방면의 경고가 있을지 모르니 이에 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궈쑹링은 무력만능을 믿지 말라고 받아쳤다. 한편 중국에 대한 불간섭, 유화정책을 표방하던 [[시데하라 기주로]] 외상은 궈쑹링의 봉기에 대해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12월 1일, 궈쑹링은 주중 일본공사 요시자와 켄키치에게 성명을 발표했다. ||중일 양국에서 조약상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 이외 귀국의 개인과 동삼성 당국과의 경제 계약이나 혹은 우리 인민들과 공동으로 경영하는 합법적 사업에 대하여는 이전과 같이 계속 유효함을 승인한다. 귀국 인사가 동삼성 정부와 기관에 고문으로 초빙된 경우에는 계속 임용할 것이다. (...) 오로지 우리 군이 기의한 때부터 봉천으로 올때까지 동삼성 정부와 장씨 개인과 외국인이 맺은 일체의 계약은 모두 무효로 한다. 또 이번 의군의 행군에 있어서 만일 항거하는 자가 있으면 부득이 토벌하지 않을 수 없다. 차관을 공급하거나 군 장비를 공급하여 상대방을 이롭게 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양국의 친선 관계를 해칠 수 있다.|| 이는 일본의 기존 이익을 옹호하겠지만 그 이후에 추가로 체결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궈쑹링은 12월 7일 금주를 점령한 후 외교처장 [[인루겅]]을 파견, 공산당을 반대하며 펑위샹과도 제휴하지 않고 그저 동삼성의 민주화와 중국군대 개혁을 바랄 뿐이란 입장을 전달하며 남만철로 통과 문제에 대해 협의했다. 궈쑹링의 부관 조운비의 회고에 따르면 일본은 궈쑹링에게 우라 중좌를 다시 파견하여 만약 일본과 장쭤린이 체결한 밀약을 승인한다면 장쭤린 하야를 압박하고 궈쑹링을 돕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각하께서 심양으로 들오게 된다면 먼저 대일본제국이 만몽에서 누리고 있는 특수 권리를 승인하셔야 합니다. 일본의 동삼성 투자에 대한 이익을 보호하고 장쭤린과 일본이 맺은 밀약을 준수하셔야 합니다. 장쭤린은 이미 밀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만일 각하께서 이 조건을 승인하시면 일본 제국은 각하 군대의 편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하지만 궈쑹링은 거절했다. >"이번 우리 군이 회군하는 것은 중국의 내정 문제입니다. 귀국의 간섭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무엇이 일본의 특수 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에 일본은 장쭤린의 권좌를 유지하는 것이 일본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동삼성 교섭총서처장 나정환의 회고에 따르면, 시라카와가 파견한 참모장 사이토와 미우라가 장쭤린과 회담했다고 한다. 사이토가 관동군의 제안을 전달했다. >사이토:"현재 궈쑹링군의 선봉 부대는 금성을 지나 신민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각하께서 만일 관동군의 도움을 요청하시면 우리는 모든 걸 사양하지 않고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장쭤린:"지금 성안이 허술해 이미 전보로 길림성과 흑룡강성의 군대를 불러 놓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당장 오기가 힘들어 그게 걱정입니다. 만일 곽의 군대가 성안으로 밀려들어오면 나는 잠시 뤼순으로 피해 있을 생각입니다. 관동군은 좋을 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사이토:"각하께서 뤼순에 잠시 가신다면 저희로서도 매우 환영입니다. 지금 모든 걸 준비해 놓았으니 각하의 안전에 대하여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별일은 없으리라고 보지만 곽의 군대가 신민현을 공격해 들어오면 관동군은 조약 규정에 따라 그들에게 통지하려고 합니다. 즉, 중국 군대가 남만철로 부지에서 작전을 할 수 없습니다. 필요시 관동군은 출병하여 막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성내 진입은 불법입니다. 우리 관동군은 몇개의 요구 조항을 고려하고 있으니 만일 각하께서 괜찮다고 여기시면 서류 위에 서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이토가 타자기로 쳐서 전달한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 1. 일본 신민은 동삼성과 내몽고 동부 지역에 상조권을 갖는다. 즉, 당 지역 주민들과 같이 거주와 상공업에 종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 2. 간도 지구 행정권을 양도한다. * 3. 길돈철로를 연장하고 도문 이동의 조선 철로와 연결한다. * 4. 조창도 소속 각 현에 일본 영사관 개설을 허가한다. * 5. 이상 4개항의 상세한 실시 방법과 이 밖의 사항은 일중외교기관이 공동으로 협의한다. 장쭤린은 이에 즉석에서 서명했다고 한다. 12월 7일, 일본의 [[가토 다카아키]] 수상, [[시데하라 기주로]] 외상, [[우가키 가즈시게]] 육상은 긴급회의를 열고 시라카와 사령관에게 장쭤린과 궈쑹링 양군에게 경고하며 관동군을 배치할 것을 지시했다. 12월 8일, 관동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는 궈쑹링에게 남만철도와 그 부속지에서 발생하는 전쟁을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으며 봉군이건 곽군이건 남만철도 12킬로미터 내에 접근할 수 없으며 접근한다면 일본군이 무장을 해제시킬 것이라고 위협했다. >"제국의 부속 토지는 물론 인근 부근에서의 전투 발생은 제국의 이익에 중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군인의 직책상 당연히 좌시할 수 없다." 이는 표면상 장쭤린과 궈쑹링 양자에 대한 경고같지만 실제로는 위기에 처한 장쭤린에 대한 구원이었다. 12월 14일, 봉천을 점령하기 위해 마충성 여단이 영구를 공격하려 하자 일본군 수비대가 영구를 중립지대로 선포하고 마충성 여단의 진입을 저지하며 경고를 보냈다. >"곽군은 남만철로 부지 30킬로미터 이내로 들어올 수 없으며 요하 연변의 작전도 할 수 없다." 12월 15일, 일본의 내각 긴급회의는 동북 지역으로의 출병을 결정하였고 시라카와 사령관이 2차 경고를 보냈다. >"일본군은 남만철로 부속 토지의 기점에서 종점까지 20화리 이내에서의 직접적 전투 행위와 부속 토지 내에 치안을 문란시키는 일체의 군사적 행위를 금지한다." 또한 관동군은 대석교, 요양, 봉천, 무순, 철령, 개원, 장춘 등 14개의 만철선 중요 지점에 무장부대 진입금지라는 푯말을 내걸었으며 내지와 조선에 주둔한 2개 사단을 봉천에 투입하여 남만철로에 주둔한 병력을 4만명으로 증강시켰다. 궈쑹링은 일본의 개입에 대해 항의했다. >"비록 금지 구역을 설정해 놓았지만 만일 우리의 진입을 막는다면 일본군 역시 공격을 감행하겠다." [[서산회의파]]도 일본이 만주에 개입할 자격이 없다고 항의하며 [[린썬]]과 [[쩌우루]]를 대표로 하여 일본 공사관에 일본의 출병에 대한 항의를 전달하고 사태를 원만히 해결해줄 것을 주문했다. 또한 궈쑹링에게 "만난을 극복하고 군벌세력을 위해 제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줄 것"을 당부하는 격렬의 전보를 보냈다. 하지만 일본은 서산회의파 따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에게 구체적인 회답을 주지 않았다. 일본은 오히려 장쭤린에게 철도를 제공해 흑룡강과 길림의 장쭤린 부대를 수송해주었고 봉천에 참호를 파서 전투에 대비해주는가 하면 치안까지 책임져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