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봉사건 (문단 편집) === 장쉐량의 설득 === 한편 장쭤린은 궈쑹링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경악하였다. 하루종일 장쭤린은 누워 담배를 피우다가 욕설을 뱉었다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쭤린은 일단 11월 24일 양위팅을 소환하여 궈쑹링이 보낸 두번째와 세번째 전문을 보여주었다. 장쭤린이 궈쑹링을 달래기 위해 자신을 파면하길 원한다는 것을 눈치챈 양위팅은 사직서도 제출하지 않고 즉각 하야해서 자취를 감추었다. 한편 양위팅의 해임은 단순히 궈쑹링을 달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궈쑹링의 전문이 장쭤린을 겨냥하고 있음은 대강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전문 어디에도 장쭤린을 직접적으로 제거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그러므로 궈쑹링의 가장 표면적인 요구인 양위팅을 먼저 제거하여 궈쑹링의 회군 명분을 약화시킨 것이었다. 이후 장쭤린은 장쉐량을 봉천으로 불러 야단치고 궈쑹링을 만류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11월 24일 밤, 장쉐량은 비서 주광목, 참모 강화남, 일본인 고문 키가 세이야 소좌를 대동하고 궈쑹링을 만나러 갔다. 11월 25일 호로도에서 진해호에 탑승한 장쉐량은 25일 진황도에 도착하여 궈쑹링에게 키가 소좌와 일본 의사 모리타를 통해 전화로 면담을 요청했지만 궈쑹링은 거절했다. 11월 27일, 장쉐량은 모리타에게 다시 한번 부탁해서 서신을 궈쑹링에게 전해 면담을 요청하며 거사가 불가능함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28일에 궈쑹링은 완강하게 대답했다. >"이번의 거사는 여러 번 심사숙고 후에 결정한 것이므로 지금 절대 중지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미 42세가 되었고 이렇게 병든 몸이 되어 아마도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상장군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야한다면 나는 장쉐량 군에게 말하여 일본에 한 3~4년 유학을 가려 합니다. 이 기간 중 나의 뜻과 포부가 일부 실현되면 원래 가지고 있던 모든 자리를 장쉐량에게 넘겨주고 저도 하야하여 한가로이 구름을 떠도는 들판에서 자유로이 노니는 학처럼 남은 여생을 보내고자 합니다. 나의 이 뜻을 상장군에게 전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궈쑹링이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며 [[시라카와 요시노리]] 사령관과 [[요시다 시게루]] 총영사에게 보증을 세우도록 하겠다고 했다. 모리타가 궈쑹링의 대답을 전하자 장쉐량은 5일간의 휴전을 제안하며 그 안에 장쭤린의 대답을 받아오겠다고 했다. 궈쑹링은 두통의 편지를 장쉐량에게 보내 장쉐량을 상장군에 옹립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장쉐량은 이 거절의 답신을 보냈다. ||형의 후의에 입어 이 쉐량이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되어 그 두터운 정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직 쉐량에게 친우의 의리로 대해주지만 개인의 욕심에 앞서 아직 아버지를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고로 형이 동삼성을 통치하고 경영하는 것에 대하여 저는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쉐량은 비록 만번 죽더라도 천추에 오명을 남기는 명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에 궈쑹링은 다시 장문의 편지를 보내 회군을 멈출 순 없다는 뜻을 전했다. 결국 장쉐량은 평화적으로 일을 해결하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어 28일 군함을 타고 [[다롄]]을 통해 봉천으로 돌아왔다. 양위팅도 29일 봉천으로 돌아왔고 장쭤린은 30일 궈쑹링 토벌령을 내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