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달리즘 (문단 편집) == 특징 == 사전적 정의로는 '고의 또는 무지에 의한 공공물 등의 오손'을 의미한다. 특히 범죄학 및 형사정책학에서는 '정신적 성숙이 신체적 성숙을 따르지 못하고 나타나는 부적응적 심리 상태에서 나타나는 문화 거부와 폭력적 반항 행위'를 말한다. 이유 없이 남의 자동차나 [[손괴|기물을 손상]]시키거나 오토바이 폭주 따위의 행위도 반달리즘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강력범죄보다는 경미한 소년 비행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며 해결책으로는 조직적인 레크리에이션을 들 수 있는데, 또래 집단과의 적응도를 사회적 적응성으로 승화함으로써 그 성향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출간된 단편집 종말문학걸작선 2권에 보면 \'반달맨'으로 부르는 부류가 나온다. [[핵전쟁]] 이후 지구에 남겨진 모든 문화예술을 철저히 파괴하는 자들로, 그 정체는 식량이 부족하자 어른들이 어린 애들을 잡아먹는 참화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눈 앞에서 친구가 잡아먹히고 자기들도 잡아먹힐까봐 숨어다니던 시절을 보냈기에 기성세대에 대한 증오심은 팽배해 있고, 그래서 기성세대가 남긴 유산의 흔적을 철저히 말살하고 있었던 것. 반달리즘은 5세기 초 [[반달족]]의 활동에서 유래되었다.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은 서기 429∼534년에 훈족을 피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갈리아의 일부를 침입해서 국토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455년에는 [[로마]]를 침입하여 [[사코 디 로마|약탈]]하고 로마인 지주들에게서 땅을 빼앗았다. 반달족은 [[아리우스파|아리우스파 그리스도교]] 를 열성적으로 믿었으며 [[후네리크]](477∼484년 재위) 치세 말기에는 한동안 아프리카의 가톨릭 교회를 심하게 박해하였다. 하지만 '문화유적 파괴'에 반달족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억울한 것이, 그들의 문화재 약탈은 다른 수 많은 이만족의 침공이나 전쟁 동안의 문화재 파괴에 비해선 매우 온건한 편이었다. 반달족은 로마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하였고, [[라틴어]]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당장에 가이세리크 왕의 로마 약탈도 당시 교황과 협정을 통해 저항하지 않는 사람을 죽이거나 고문하지 않고 건물에 불을 지르지 않았다. 말 그대로 [[홍위병|문화재를 때려 부수기보다는]] 재물을 약탈하는데 집중했다. 오히려 북아프리카에 자리를 잡은 반달 왕국은 533년 [[동로마 제국]]의 장군 [[벨리사리우스]]에게 의해져 멸망하면서 흔적도 없이 불태워지고 말았다. 그래도 [[로마]]가 털렸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에 반달족은 문화파괴자로 기억되고 말았다. 현재 사용되는 '반달리즘'이라는 단어는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 세력이 교회를 때려 부수는 모습을 반달족에 빗대면서 등장한 단어이다. 근년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대도시에서 약탈과 살인, 공공시설의 파괴, 방화 등의 도시범죄가 급증하는 세태를 이르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인류의 반달리즘의 사례는 기원전 4세기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356년 [[그리스]] [[에페소스]]의 헤로스트라투스란 사람이 [[관심병|악행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생각]]으로 [[아르테미스 신전]]에 [[방화죄|불을 질렀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그리스 최초의 순대리석 신전으로 파르테논 신전의 두 배 규모에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건축물이었다. 한국사에서 자행된 반달리즘은 삼국전쟁 당시 당군에 의해 행해진 고구려와 백제 지역에 대한 대규모 파괴가 있었고,[* 특히 당의 고구려에 대한 증오는 상당하여 수도를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렸고, 평양은 남북국시대 내내 변경지역으로만 남았다. 그나마 고려시대에 가선 다시 복구가 진행되어 대도시로 다시 기능하게 되었다. 백제의 경우는 당군에 의한 반달리즘으로 생긴 도끼자국이 왕가의 무덤에 남아 있다.] 백제의 문화재인 [[정림사지 오층석탑]]에는 당나라 장수인 [[소정방]]이 비문을 새겼다. 신라 또한 후삼국시대에 견훤에 의해 조직적인 파괴공작을 겪었다. 고려시대에는 요나라의 침공에 수도가 함락당해 장서를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불탔던 적이 있으며, 특히 몽골 제국의 대규모, 장기침략 동안에 어마어마한 파괴가 일어났다. 조선시대 초에는 [[세종대왕]]이 1426부터 1428년까지 역대 고려왕과 왕비의 [[어진]]과 기록을 불태워 버리고, 조각상과 유물을 파괴한 사건이 대표적이다.지도자가 아닌 국민들로 말미암아 자행된 파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백성들의 파괴가 대표적이며, 근대에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귀중도서 등 문화재를 약탈하고 불을 지른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리고 사례로는 [[탈레반]]의 [[바미안 석불]] 파괴,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ㆍ[[이라크 전쟁]] 후 문화유산 약탈 등이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의 문화재 파괴도 이에 해당된다. 부동산 등 이권(돈)이 얽혀 있어서 저지르기도 한다. 돈이 되는 문화재는 지키되 돈이 안 되는 문화재는 개발에 도움이 안 되니 때려잡자는 식. 문화재를 [[복원]]하기 어려운 까닭이기도 하고, [[계획적 구식화]] 전략이 생긴 까닭이기도 하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면, 전쟁 와중에도 상대방의 문화재를 파괴하는 행위는 하지 않는 것이 전쟁에서 나름대로의 최소한 상도의(?)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때 [[교토]]만큼은 건드리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 당시 육군 장관이었던 스팀슨이 신혼여행지로 다녀온 교토의 문화에 감격하여 폭격 후보에서조차 그의 명령으로 제외되었다. 빨치산을 제거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폭격하라는 명령을 거부하여 사형당할 뻔했다가 항명죄를 묻지 않고 기사회생한 [[김영환(군인)|김영환]] 공군대령도 그랬다. ISIL이 민간인 학살 다음으로 매우 많은 비난을 듣는 이유가 바로 이 반달리즘이다. 21세기 들어서는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많이 상승함에 따라 일부 학생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이 반달리즘을 하지 않는 편이다. 설사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이라도 교육만 잘 시킨다면 [[반달]]하는 행위를 피할 수 있다. 서기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침략]]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문화재들이 파괴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