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가사유상 (문단 편집) == 상세 == 우리나라에 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반가사유상은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78·83·118호, [[대한민국의 보물|보물]] 제331·643호 등 여러 점이 있는데 본 문서에서는 이 중 대중적으로 유명한 국보 제78호와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金銅彌勒菩薩半跏像)을 중점적으로 설명한다. [youtube(vM8sQlbVU_A)] 각각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78호, 제83호에 지정된 이 두 [[불상]]은 삼국이 한창 피 터지게 싸우던 시기인 6~7세기 만들어진 유물로, 세계적으로도 아름다운 고대 [[불교]] 문화재 중 하나로 손꼽힌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여느 문화재들과 달리, 이 두 불상은 '[[사유의 방]]'이라는 전시관 하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만큼 특별하고 귀하게 취급받고 있다. 두 불상 모두 위대한 걸작이지만 굳이 우열을 논하자면 83호가 평가가 조금 높은 편이다. 화려함의 정도는 78호가 앞서지만 옷 주름이나 손가락 등의 세밀한 표현기법과 사실성, 입체성의 기준에 있어 83호가 더 훌륭하다고 평가받으며 도무지 [[국적]]을 종잡을 수 없는 78호와 달리 83호는 [[신라]]로 의견이 모아진 상태라 연구에도 용이하다. 또한 [[일본]] 고류사의 목조반가상과의 유사성 등을 토대로 [[삼국시대]]의 [[한일관계]] 연구에서도 [[칠지도]], 목화자단기국 등의 문화재와 더불어 가장 의미 있게 논의되는 유물이기도 하다. 또한 사이즈 역시 10 cm 가량 83호가 더 크기도 하고 무게는 3배 가량이나 더 많이 나간다. [[한국사(교과)|한국사]] [[교과서]]의 표지나 내용에 수록된 사진에서도 78호보다 출현 빈도도 훨씬 높고 대중적 인지도 역시 더 높다. 83호가 더 수법이 뛰어나기 때문에 학자들은 78호가 6세기 후반, 83호는 그보다 반세기 더 늦은 7세기 초반 즈음에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해외 박물관에서도 83호의 전시 요청이 훨씬 많고 실제로 83호가 훨씬 많이 출국하기도 했다. 요즘은 문화재 보호 등의 이유로 거의 뜸해졌지만. 참고로 문화재 보험 가격은 78호가 약 300억, 83호가 약 400억 정도로 측정되었다. 국보 78·83호 두 [[불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불교]] 문화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보러 온다.'는 마니아 그룹까지 생겼다. [[박물관]] [[큐레이터]]가 유물을 설명해주는 '[[큐레이터]]와의 대화' 시간에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유물이다. 모 회사원은 "반가사유상을 보고 있으면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말했으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본래 2개 모두 한 번에 보여줄 수도 있지만, [[문화재]]의 특성과 관리로 인해 보통 6개월에 한 번씩 로테이션을 도는 것처럼, 한 [[불상]]이 6개월 동안 전시되는 동안 나머지 하나는 [[수장고]]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문화재연구소로 옮겨져 연구대상이 되거나, 또는 보존실로 모셔져 특수 약품 처리를 받으러 간다. 그러나 2020년 8월 25일부터 2021년 2월 14일까지 국보 78호 반가사유상과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을 각각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내 1층 특별전시실과 3층 불교조각실에 나누어 전시 중이니 두 유물을 모두 관람하고자 한다면 이 기간 내에 방문하도록 하자. 2021년 2월 3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주요 업무계획을 발표하며 2층 기증관 입구에 440m^^2^^ 전용공간을 만들어 두 반가사유상을 '''동시에''' 전시하겠다고 밝혔다. 10월 28일 전시를 위해서 약 100일간은 전시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https://www.instagram.com/p/CRgWYXPM9mo/?utm_medium=copy_link|공식 인스타그램]]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반가사유상 전시1.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반가사유상 전시2.jpg|width=100%]]}}} || 2021년 11월 12일부터 전용 전시 공간인 '사유의 방'에서 두 반가사유상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되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12786640|연합뉴스]], [[https://www.youtube.com/watch?v=uZXjRe2XKPk|국립중앙박물관 공식 유튜브1]], [[https://www.youtube.com/watch?v=udWknOCpbsM|국립중앙박물관 공식 유튜브2]] 해외 문화 교류로 외국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총 9번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특히 2013년 10월 말에는 세계 최대급 박물관으로 꼽히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신라]] 특별전 전시를 위해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반출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호암 금동관]] 파손 사태를 문제삼아 변영섭 [[문화재청]]장이 반출을 불허하고 레플리카를 [[미국]]으로 보내려다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측의 수차례에 걸친 요청으로 [[문광부]]가 직접 개입하는 소동 끝에 반출이 이루어진 것은 공공연한 비밀. 한 번 해외로 나갈 때는 문화재 보험에 들게 된다. 이 정도 국보급 유물이 해외에 나갈 때는 보통 빌려 가는 국가 정부에서 직접 보험금 지급 보증을 서는 경우가 많다. 이때 보험금이 1990년대 말에 이미 약 300억 원, 2013년 미국 반출 때는 약 500억 원으로 책정되었다. 하지만 통상 보험평가액은 실거래 금액의 10분의 1 정도로 산정함을 고려한다면 이 반가사유상 2점은 수천억 원을 호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불상들의 역사성과 작품성 등을 따진다면 실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이 두 불상은 공통의 의문점도 가지고 있는데 바로 [[고향]](출토지)이 어디인지 확실히 모른다는 것이다. 가장 완성도 높고 유명한 국보 78호와 83호 두 문화재는 직접 발굴해 소장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도굴했던 것을 [[박물관]]이 거액의 돈을 주고 사 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학계에서는 78호에 대해서는 신라 제작설이 약간 우세하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정도고, 83호는 신라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보고 있다. 둘 다 아직까지 100% 확신할 수 있는 증거는 없으나 대략적으로 통일신라 이전의 것이라는 것만 확실하다고 결론지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