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흥숙 (문단 편집) === 자백 === 살인을 저지른 박흥숙은 놀라서 도주하였고 박흥숙의 여동생은 시내로 내려가서 [[광주광역시청|광주시청]]으로 가서 [[광주광역시장|시장]]을 만나려 했으나 시장은 만나 주지 않았다. 그녀는 시청 직원에게 사건의 전말을 전한 뒤 없어진 집터로 갔다. 이로 인해 어머니는 [[공무집행방해죄]], 여동생은 살인방조 혐의로 체포되어 무등산에서 하산했다.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한편 박흥숙은 광주 시내로 내려와 예금해 두었던 돈을 찾고 머리를 깎고 양동시장에서 하늘색 재킷을 산 뒤 시외버스를 타고 여수로 향했다. 그는 여수에서 1박을 한 다음 [[여수엑스포역|여수역]]에서 서울로 향했으며 [[서울역]] 앞의 여인숙에서 다시 1박 후 [[노원구]] [[상계동]]에 있던 이모 집에 숨어 있다가 시민의 제보로 붙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소한 상계동에서 체포되었다는 것은 경찰의 조작으로, 박흥숙의 진술에 따르면 광주에서 여수로 기차를 이용하여 이동했다. 그는 이 기차 안에서 해외로 나가는 배를 타는 정 모 씨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에 의하면 정 모 씨는 북한의 간첩으로 의심되는 말을 썼다고 한다. 그가 간첩임을 확신한 박흥숙은 날이 늦었으므로 우선 여인숙에서 1박을 한 다음 서울로 향하였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간첩신고를 하러 [[중앙정보부]]를 찾았고 더불어 자신이 광주 무등산에서 살인을 저지른 박흥숙이라고 자신의 실명을 밝히며 '''자수'''도 했다고 한다. 이후 중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받고 검거, 즉 [[자수(법률)|자수]]하여 연행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는 박흥숙의 진술에 의한 것이니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지만 최소한 제보로 붙잡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수한 것은 재판부에서도 인정한 사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