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태영 (문단 편집) === 정계 활동 === 그러나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퇴사하면서 정치인이 되었다. 14대 총선 결과 전남 담양군과 장성군의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15대 총선]]에서 [[국창근]] 후보에 밀려 낙천되었고, [[1997년 재보궐선거#s-5|1997년 12월 재보궐선거]]에서도 본인 모교인 [[광주고등학교(광주)|광주고등학교]]가 위치한 광주 [[동구(광주)|동구]] 선거구 공천을 신청했으나, [[민주정의당]] 출신인 [[이영일(정치인)|이영일]] 전 의원에게 밀려 낙천하였다. [[1998년]] ~ [[1999년]] [[김대중]]과의 인연으로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전남지사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전라남도지사]]로서의 경력은 그에게 있어 너무나 끔찍했다. 전남지사 취임 한 달만에 아들(박명주)과 손자의 대한민국 국적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이 유출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2000년]]에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재직 시절에도 인사비리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었으며 [[2004년]] [[4월 27일]], [[4월 28일]]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 다음날인 [[2004년]] [[4월 29일]]에도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건강이 나쁘다는 핑계로 검찰 조사를 늦추었다. 차를 타던 중 한강다리에서 갑자기 운전기사에게 머리가 아프니 차를 세우라고 했고, 차에서 내려 [[투신자살]]했다. 박태영은 급히 [[병원]]에 옮겨졌으나 숨을 거두었다. 이후 전남지사직은 [[2004년 재보궐선거#s-2|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준영]]이 이어받았다. 사망 전인 탄핵 정국당시 때와 같이 하여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입당을 선언했는데, 열린우리당은 입당원서 제출시 바로 당원으로 인정되는게 아니라 입당심사를 거쳐 입당을 해야 했고, 박태영은 입당심사를 받지 않아서 사망할 때까지도 열린우리당 당원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당에서도 좀 비정한 거 아니냐 하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