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중훈 (문단 편집) == 활동 == TV보다는 영화에서 주로 활약하였으나 초창기에는 탤런트 시험에도 지원했으나 잘 풀리지 않았다. 다만 합동영화사에서 [[깜보]]라는 영화의 배우를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달려갔다. 그래서 시나리오에 맞춰, 동대문 시장 같은 데 다니면서 의상을 준비했으나 다른 배우에게 섭외가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만은 없었서 학교를 안 가고 영화사로 출근을 했다고 한다. 매일 아침에 커피 심부름과 같은 여러 잡심부름을 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충무로 상업영화 '''[[깜보]]'''를 통해 정식으로 영화 데뷔하였다. 당시 극장 흥행 성적이 그닥 좋진 않았으나 이 영화는 '박중훈'이라는 배우의 존재를 충무로에 확실히 각인시킨 영화였다. 그는 그 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하였다. [navertv(684304)] [[1987년]] 그는 [[강수연]]과 이규형 감독의 장편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청춘 스타로써 발돋움하였다. 현재로써는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유치한 영화지만 어쨌든 현재 나이든 세대가 기억하는 박중훈의 예능감이라든지 아니면 특유의 유쾌함이 물씬 묻어나는 영화로 이 영화는 그 해 한국영화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하였다. 그는 덕택에 1980년대 [[최재성(배우)|최재성]]과 최고의 청춘스타였다. 최재성이 잘생긴 얼굴로 카리스마 있는 위치라면 박중훈은 그의 실제 성격과는 별개로 매우 유쾌하며 밝은 이미지의 스타였다. [[1988년]], [[1990년]] 당시 청춘스타였던 최재성과 영화 '내 사랑 동키호테',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에 연이어 출연하였다. 두 영화를 통해 확고한 스타로 자리잡았다. [[1988년]] 그는 [[안성기]]와 [[박광수]] 감독의 영화 '칠수와 만수'에 출연하였다. 그가 배우의 연기 측면에 좀 더 대중들의 관심받는 계기가 되었다. 극중 안성기와 케미가 이후로 유명해졌다. 그는 [[1989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1990년]] [[장선우]] 감독의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에, [[문성근]],[[심혜진]]과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에 출연하였다. 청춘스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이 들끓던 시절, 그는 '''사회적인 주제 의식을 지닌 영화의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배우로써 한 단계 성장하였다. 그는 '[[우묵배미의 사랑]]'으로 그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최연소 수상자.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한편 박중훈은 [[최진실]]과 함께 [[이명세]] 감독의 코미디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출연하였다. 여기서 박중훈은 미영의 남편 영민 역을 맡아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1991년]] 한국 영화 흥행 순위 2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고, 이 영화로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1993년]] [[SBS]]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으로 TV쪽에도 발을 담궜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황일천 병장 역을 맡아 그 해 열린 [[SBS 연기대상|SBS 스타상]]에서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1993년]] [[강우석]] 감독의 영화 '[[투캅스#s-2|투캅스]]'에 출연하였다. 투캅스는 [[1994년]] 국산 1위 흥행 영화였으며 2010년 초반까지 반복되던 전형적인 한국식 코미디 영화의 기틀을 세운 작품으로 강우석이라는 감독에게 대한민국 최고감독의 위치를 안겨줌과 동시에 박중훈과 안성기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을 안긴 작품이다. 안성기와 박중훈의 케미는 그 당시 최고의 케미로 자리매김했다. 박중훈은 투캅스로 1994년에 [[대종상 영화제]]에서 안성기와 함께 남우주연상과 인기상을 수상하였다. [[1994년]]에는 [[게임의 법칙]]에 출연하여 시골 출신 양아치가 뛰어난 실력으로 중간보스 자리에 오르다가 순진한 성격으로 인해 비운의 죽음을 맞는 용대 역을 맡아 느와르 장르의 연기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그해 열린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 인기스타상을 수상하였다. 같은 해에는 블랙 코미디 영화 [[마누라 죽이기]]에 최진실과 함께 출연하였다. 박중훈은 영화 제작자인 아내가 싫어져 아내를 죽이기로 결심하는 공처가 박봉수 역을 맡았다.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중 하나다. [[1993년]]~[[1994년]]은 박중훈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충무로 최고의 배우'''로 성장하며 당시 인기스타로 발돋움했다. 이후에도 박중훈은 1995년 <꼬리치는 남자>,<돈을 갖고 튀어라>, 1996년 <투캅스 2>, 1997년 <할렐루야>, <인연> 등의 코미디 영화들에 연이어 출연하여 1990년 당시 '''국민 배우'''로 불릴 만큼 엄청난 입지를 가진 배우로 활약했다. 같은 해에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에서 남우주연상과 인기상을 휩쓸었을 정도로 상복도 좋았다. 특히 청룡영화상에서는 94,95,96,97 4년 연속으로 인기스타상을 수상하였고 4연속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