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중빈 (문단 편집) === 구도 과정 === 7살 즈음에 '하늘은 얼마나 높을까', '바람과 구름은 어디서 왔을까' 등 자연현상에 의문을 품었다. 원불교에서는 이를 대종사 구도생활의 시초로 본다. 9살, 10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다른 의문들이 이어지고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확장되었다고 한다.[* 꼭 대종사가 아니더라도 어릴 때는 어른들이 보기에 대수롭지 않은 것에도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몰라 하고 집어치우느냐 끝까지 파고드느냐의 차이.] 그 시절 그 시골에서 꼬마아이가 의문을 해결할 방법은 많지 않았다. 11살 즈음에는 친척들이 조상에게 제사하기 전에 산신에게 먼저 제사하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는데 산신이 크게 신령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듣고 자신이 지금껏 궁금한 점을 산신을 만나 물어보면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 뒤 매일 동네 뒷[[산]]에 올라 5년을 산신에게 기도하였다. 그러나 산신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는 16살 때 고대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도사를 만나서 소원을 이루는 것을 보고 존재 여부도 알 수 없는 산신 대신 도사를 찾아다니기로 했다. 그 후 길거리에서 이상한 사람이나 걸인이 보이면 혹시나 도사인가 싶어서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어디에 비범한 인물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찾아가서 같이 지내기도 하며 그렇게 6년 정도를 도사를 찾아 다녔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았으나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20살이 되던 1910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22살 때 부터는 도사를 만날 생각도 점차 접게되고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라는 생각에 잠기고 근심에 가득차게 되었다. 이후 혼자서 수행을 계속 하였으나 25세부터는 말해도 말하는 줄 모르고 먹어도 먹는 줄 몰랐다. 몸은 쇠약해져서 온 몸에 종기가 나고 밥도 제대로 못먹는 등 거의 폐인처럼 지내서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도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던 1916년 음력 3월 26일(양력 4월 28일) 새벽, 조용히 묵상하던 중 큰 깨달음을 얻으며 그 동안의 의심이 풀리고 정신이 맑아지며 기운을 차렸다. 원불교에서 '원불교 열린날'이자 '우리 모두의 공동생일'로 경축하는 '''[[대각개교절]]이 바로 이 날'''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