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준태(1967)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야구명문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제일고]]와 [[동국대학교]]를 거쳐 1989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했다. 빠른 발과 준수한 컨택능력을 갖고 있었고 고교 시절에는 투수와 내외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최초로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황금사자기]] 2년 연속 MVP를 수상해 같은 광주일고 후배인 [[이종범]]에 앞서 "야구천재"라는 말을 듣고 있었으나, [[태평양 돌핀스]]에서는 별로 빛을 못 봤고 1992년 6월말에 만년 3할타자인 [[LG 트윈스]]의 [[윤덕규]]를 상대로 트레이드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나마 92년에는 114경기 7홈런(태평양-58경기 5홈런 LG-56경기 2홈런)을 치기도 했다].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과는 달리 프로 입단 후 3년간은 별다른 활약이 없었기 때문에 LG팬들은 [[이광환]] 감독이 태평양에 조공 트레이드를 해줬다고 반발했고, 팬들의 성화에 화가 났는지 박준태는 LG에 와서 포텐을 터트렸다. 슬로우스타터와는 정 반대로 7월까지는 엄청난 기록을 보여주곤 했다. LG의 전성기였던 1993년과 1994년 4월에는 4할대, 7월까지는 모두 3할 중반대를 치고 타격 수위를 다투었으나, 체력저하로 7월 이후에는 죽쑤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1993년에는 타율 .267로 마쳤고, LG의 전성기인 1994년에는 .274로 마쳤다. 이 후 [[김재현(1975)|김재현]](1994년), [[심재학]], [[조현(1976)|조현]](1995년), [[이병규(1974)|이병규]](1997년) 등 좌타자 외야수들이 잇달아 입단하면서 입지가 좁아졌고, 1999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강기웅]]과 함께 시즌 초반에 날다가 후반기에 체력저하로 무너져내리는 대표적 스타일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