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준서 (문단 편집) ==== 2002~2011 시즌 ==== 나름대로 주목받는 유망주였지만, 성장이 정체되면서 주전 자리를 꿰차는 데 실패했다. 결국 주로 1군 백업과 2군을 오가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특히 주전 2루수였던 조성환이 2004년 골절상으로 시즌 아웃된 데 이어 병역 비리로 3년의 공백을 가진 사이에도 결국 주전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점이 뼈아픈 대목. 2004년[* 타율은 2할 4푼대였지만 157타수동안 2루타 10개, 3루타 3개를 쳐내는 등 쏠쏠한 활약을 했다.]에는 [[한화 이글스]]의 [[송창식(야구선수)|송창식]]이 던진 공에 머리를 맞아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 불운이 겹쳤다. 주로 2군에서 많이 머물렀지만, 키스톤에 공백이 생길 때 자주 콜업되었던 선수였다. 하지만 통산 타율이 2할을 간신히 넘는데서 알 수 있는 저조한 타격, 모델 워킹 소리까지 듣는 성의없는 주루 등으로 인해 1군에 올라올 때마다 롯데 팬들에게 아주 많이 까였다. 그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등번호 16번[* [[박정태]]의 선수 시절 등번호다.]을 배정받았다고 까였고, 2012년에는 등번호 7번[* 전년도 [[문규현]]이 배정받았던 등번호다.]을 배정받았다고 또 까였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절대''' 터지지 않을 유망주[* 라고 보기에도 힘든 [[1981년]]생]로 취급받았고, 박준서가 주전 나오는 상황이면 롯데는 그 시즌 망한거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 그래도 2할을 넘기기조차 버거운 타격 능력을 가지고 15년째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수비력. 젊었을 땐 1루 2루 3루 유격수까지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가치가 높았다. 따라서 경기 후반 대타 기용 후나 굳히기 상황에서 대수비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3루수]]와 [[유격수]]를 많이 봤으며 특유의 순발력과 유연성으로 잡기 어려운 타구를 귀신같이 처리해 팀 승리를 이끈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공격 일변도의 라인업을 선호했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조차 부임 첫 해 개막 엔트리에 박준서를 넣었을 정도. 다만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는만큼 한 포지션에 특화되지 못해 수비의 안정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30대를 접어들면서 타격 능력은 향상되었는데 수비력이 갈수록 퇴보하는 중. 특히 2012년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잇달아 치명적인 실책을 저질러 팀을 탈락시킨 임팩트가 너무 큰 탓에, 수정되기 전 나무위키 박준서 문서에는 농담으로도 수비가 좋다고 하기는 힘들다는 서술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근래엔 거의 [[1루수]]와 [[2루수]]로만 기용되고 있다.[* 2012년 인터뷰에서 자신은 [[3루수]]가 가장 편하고 [[유격수]]가 자신없다고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