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주영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한때 '천재'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았던 선수로, 황선홍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원톱을 이끌었던 공격수다. 특히, 이전까지의 한국 축구의 공격수들은 골대 앞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플레이를 하기가 일쑤였는데, 신인이던 당시 언론으로부터 "한국 축구 최초로 골대 앞에서 침착함을 갖춘 천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골대 앞에서의 플레이가 여유있던 선수였다.[* 사실 이건 지금도 드물지만 더더욱 축구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언론인이 드물었던 당시 수준에서, 하여튼 문전 앞에서의 침착력 문제 or 정신무장의 부족 or 조직력 부재 or 기술의 부족 등등 정형화된 몇 가지의 레퍼토리만 가지고 있던 축구 언론인들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즉 옛날 축구 언론인들이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축구관으로 때려맞추다 보니까 나오는 평가였기 때문에, 옛날의 신인들은 종종 이런 평을 듣곤 했다.] 특히 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나 빈 공간으로의 쇄도, 2선에서의 침투 능력에는 발군의 기량을 자랑했다. 상황 예측과 판단이 빨라서 라인 브레이킹에 능하다. 이 때문에 박주영이 스피드가 좋은 선수라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실제 주력은 100m를 12초 대에 주파할 정도로 2002년 이영표, 송종국, 황선홍과 비슷한 수준. 순간 속도도 뛰어났으며 민첩성은 아주 좋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상술한 상황 예측 및 판단력으로 커버했다. 뛰어난 키핑력도 가지고 있었고 점프력도 뛰어나[* 모나코 피지컬 테스트에서 점프 기록 1M를 달성하였다.] 182cm라는 키에 비해 상당한 제공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점프력을 이용한 정확한 포스트 플레이도 수준급이었다.[* 초창기에는 피지컬도 약했고 포스트 플레이 및 제공권도 좋지 못했다. 천재라고 하지만 가능성 수준이었고 무시무시한 노력으로 보완하여 만들어진 장점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폼이 완전히 망가진 2014년 월드컵 당시에도 제공권 분야에서는 끝판왕급이던 [[김신욱]]급은 아니어도, 당시 폼을 감안하면 불가사의할 정도의 공중볼 경합 능력을 보여줬을 정도. 커리어 초기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바탕으로 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볼 키핑은 초년병 때부터 매우 뛰어났고 세계 레벨에서도 어느 정도 통했기 때문. 등진 상태나 회전하면서 다음 동작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힘 좋은 유럽 수비수들 사이에서 비비면서 약간의 틈만 보이면 바로 돌아 들어가서 벗겨내려 들어 수비수들의 골치 좀 썩혔다. 드리블의 경우 전성기 때에는 뛰어난 예측력을 기반으로 한 번에 확 치고 나가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즉 일단 공을 잡아놓고 상대 수비수가 마크하러 오면 수비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서 반대 방향으로 순간적으로 확 치고 나가는 유형. 볼 키핑력과 예측력이 있기에 가능한 스킬이었는데 나이를 먹고 무릎 부상을 포함한 피지컬 하락을 겪으면서 평범한 수준이었던 순간 속도나 가속력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드리블은 잘 시도하지 않는다. 위치 선정도 뛰어난 편. 특히 유럽 진출 전 선수 생활 초기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타다가 침투해서 득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 진출 이후 피지컬을 보완하면서 버티고 공중볼을 따내는 스타일로 변모했지만, 몸싸움이 부족한 커리어 초기에는 라인 브레이킹을 통해 침투해서 골을 넣거나, 나와서 공을 받고 수비수를 제껴서 넣는 이지선다형 공격수였다. [[프리킥]]도 상당히 뛰어나다. 페널티 박스 왼쪽 약간 바깥에 프리킥이 걸리면 여지없이 골이나 유효슛으로 연결했다. 프리킥을 도맡아서 주구장창 난사하는 스타일인 이천수 김치우 등에 비해서 정확도나 킥의 질이 훨씬 좋았음에도 국가대표 초기에는 본프레레나 아드보카트 같은 감독들에게 저평가당하며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국대팀이 지역예선 광탈직전이었던 우즈벡전에서 극적인 버저비터로 팀을 구해내고 쿠웨이트전 선제골 등 박주영이라는 선수의 최대 수혜자로서, 업고다녔어도 모자랄 인간이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는 망언이나 해대다가 얼마 못가 경질당했다. 아드보카트 또한 공격 성향의 박주영을 키커는 커녕 수미로 내려놓고---제정신인가--- 조재진에게 로빙볼이나 띄우는 역할을 시켰다. 그 결과는 스위스전 0대2 완패. ] 반면 귀네슈 감독 시절 fc서울이나 허정무 감독 시절 대표팀에서 주축으로 활약하던 시기에는 박주영이 전담 키커를 맡았다. 특히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행을 결정지은 나이지리아전 프리킥은 박주영의 프리킥 능력을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 나이를 먹고 노쇠화가 진행된 이후에도 발끝은 어느 정도 살아 있는지 가끔씩 환상적인 프리킥을 보여준다. 커리어 초기 가장 큰 약점은 몸싸움. FC 서울 1기 시절의 박주영은 높은 키핑력과 발재간, 센스가 돋보였지만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당시 정교한 패스로 상당수의 골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히칼도]] 역시 몸싸움이 약했다. 이 시기 박주영이 잘 나가던 것도 냉정히 얘기했을 때 데뷔 시즌 전반기까지일 뿐, 후반기 시즌에 들어서며 이미 박주영 공략법이 나왔다는 말이 다른 팀 수비수들의 인터뷰에서 흘러나옴과 동시에 박주영의 성적도 곤두박질쳤다. 상대가 터프하게 마크해오면서 후기리그에 [[FC 서울]]의 성적이 크게 하락하는 원인이 되었고, 2006년에도 2005년 후반기 시즌처럼 수비수에게 패턴이 읽혀서인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2007년 [[세뇰 귀네슈]]가 부임한 이후에는 스트라이커가 아닌 사이드 미드필더로 뛰면서 경기력을 크게 회복했지만, 데뷔 시즌 말고는 스탯 생산력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모나코 이적 후 한동안 피지컬에 눌리고 스피드와 라인 브레이킹에만 의존해야 해서 다소 저조한 커리어를 기록했지만, 그대로 도태되는 대신 스스로를 갈고 닦아 몸싸움과 제공권 능력을 크게 보완해 주축 공격수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했다. 모나코 2년차인 09-10시즌부터 박주영은 한국에서 독보적인 중앙 공격수로, 이 시기 박주영이 골을 많이 넣는 뛰어난 스코어러는 아니었지만 현대 축구에서 필수적인 원톱 역할, 수비진과 경합하며 골문 부근에서 공을 따내고 지키는 공성추 역할로서는 대체 자원이 없었다. 물론 그 반동으로 청소년 대표 때의 화려한 모습은 다소 잃었지만 세계 무대에서 언더독인 한국에게 포스트 플레이로 제공권을 확보하고 1선과 2선을 연계해 공격을 풀어나갈 수 있는 박주영의 존재감은 다른 공격수보다 뚜렷했다. 현대 축구에서는 대체적으로 원톱이 득점만큼이나 상대 수비수의 집중력과 시선을 분산하면서 2선 공격수들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연계력도 중요한데, 박주영은 동 시기 대표팀 공격수로 발탁되었던 이동국, 이근호, 정성훈, 김신욱, 지동원 등보다 이런 면에서 우위였다. 다만 플레이 스타일이 변하면서 골 결정력은 언제나 지적받는 요소였다. 아스날에서 박주영을 영입할 때 모나코 팬들은 아스날 팬들에게 기술이 뛰어나고 영리하지만 1:1 결정력이 약한 선수라고 소개했는데 기복이 있어서 컨디션에 따라 결정력이 들쭉날쭉했다. [[최순호]]에게 "10점 만점에 늘 8,9점을 찍어야 하는데 7점 이하로 떨어질 때가 있다."라는 평을 받을 정도. 집중력과 투쟁심 부족도 큰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침착하게 경기 내내 흐름을 유지하는 건 좋지만 페이스를 확 끌어올려야 할 지점에서도 본인의 페이스와 리듬만 유지하다 템포를 못 따라가 오는 패스를 멍하니 있느라 놓친다거나, 간단한 패스를 트래핑 실수로 못 받는 등 안일하거나 어이없는 플레이가 나오곤 한다. 수비가담에 대한 의지 부족도 자주 지적된다. 지금은 나이 때문에라도 상대 수비를 압박하거나 재빨리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서 수비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지만 전성기 때도 수비가담과 압박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약팀과 경기하는 아시아권 대회에서 맹위를 떨쳐야 함에도 최용수나 황선홍, 이동국처럼 상대를 압살하는 플레이는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는 이미지도 있다. 실제로 아시아 예선에서도 박주영이 최고의 기량을 펼친 것은 최종예선이 아니었다. 아스날 이적 직후 아주 좋은 폼을 보여주었던 것은 맞는데 최종예선은 아니었고 최종예선 시기에는 아스날에서 못 뛰면서 좋지 않았다. 또한 아시안게임에서도 와일드카드로 참여한 황의조가 대회를 지배했던 것과는 달리, 박주영은 와일드카드로 참여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그저 그런 활약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아시안컵에 참가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쉬울 수 있으나, 아시아 예선도 그렇고 특히 와일드카드로 참가한 아시안게임에서의 그저 그런 활약이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주영의 최대 흑역사가 된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2015년 K리그로 돌아온 이후에는 신체 능력이 크게 죽어버린 대신 유럽 진출 이전 보여주었던 키핑력과 경력이 쌓이며 나아진 시야와 패스 능력을 바탕으로 2선 공격수로 주로 뛰고 있다. 간혹 최전방 원톱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신체 능력이 많이 죽어서 K리그에서도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기에 조커로 쓰이거나 몸 상태가 좋은 시즌 초반에나 잠깐 투입되는 수준이었다. 2015년 K리그로 돌아오면서 또 플레이 스타일이 달라졌다. 최전방에서 2-3선까지 내려오면서 연계 중심적인 경기를 펼치다가 서서히 톱으로 올라가고 팀이 약간 내려가 있는 상태에서라면 단숨에 치고 올라가 논스톱으로 슛을 때린다던가 혹은 중거리 슛. 전성기와는 다른 타입이 되어버렸다. 좋은 헤더 및 제공권 장악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릎 부상의 여파에 따른 후유증으로 2018년부터는 코너킥 시 헤더가 아닌 키커를 담당하는 등 점차 킥과 키핑, 연계력을 바탕으로 뛰는 테크니컬한 플레이스타일로 바뀌었다. 위에서도 길게 설명했지만 가시적인 박주영의 능력치만 놓고 말하자면, 전형적인 육각형 스트라이커이자 최순호와 황선홍의 뒤를 잇는 만능 공격유닛은 맞는데, 기복이 있고 뭔가 능력치가 고르게는 분포하지 않은 '''살짝 작은 육각형 공격유닛'''에 가깝다.[* 국가대표에서도 많은 능력치가 최고라고 할 수는 없어도 그 다음 가는 그룹쯤에는 무난하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민첩성, 결정력, 집중력 등 아시아 무대를 압살하는데 필요한 능력치가 부족하기는 하다. 하지만 제공권이나 시야, 볼터치, 드리블, 축구감각 등 축구강국과 대결하기에는 적합한 능력치를 갖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감독들 입장에선 전술적으로 상당히 편안한 스트라이커가 된다. 박주영은 세계 기준으로라면 몰라도 한국 기준이나 아시아 기준으론 많은 능력치가 상당히 뛰어난 공격수며 몇몇 능력은 세계 기준으로도 평균 이상이다. '''이 말은 즉 소화할 수 있는 전술폭이 매우 넓다는 의미도 된다.''' 전성기에는 활동반경도 상당히 넓어서 공격작업을 하다가도 또다른 골대 앞에서 아군 센터백 뒤를 커버쳐주기도 하는 등 현대 축구에 충실하게 따른 공격수였다. 골대 앞에서 주워먹는 포처뿐만 아니라 점프해서 뜬공을 동료한테 떨궈주는 타겟맨, 2선에서 1선을 지원하는 처진 스트라이커 같은 공격수부터 수비라인에서 공격라인으로 공을 몰고 가는 플레이메이커같은 공미 역할도 어느 정도 수행 가능했으며, 심지어 상대 수비수들을 중원으로 몰고 다니며 공간을 창출하고 공미들의 공격 가담을 지원하하기도 하고 공격수로 수행해야 하는 대부분의 플레이가 가능했다. 이러한 넓은 전술폭은 만약 박주영이 골을 넣지 못한다 해도 팀에 확실한 도움이 되는 점이었다. 대표팀에서도 박주영이 상대 수비수들을 몰고 다니며 공간을 창출하는 동안 박지성, 이청용이나 구자철이 전방으로 뛰어들고, 이들이 득점하면서 팀이 승리하는 패턴이었는데, '''다시 말하지만 당시 한국 프로선수 전부 통틀어 전방에서 이런 플레이가 가능했던 건 박주영밖에 없다.'''[* 허정무, 조광래 때 붙박이 주전이었던 건 맞지만 최강희 때는 아니었고, 홍명보 때는 홍명보의 아집이었다. 그렇지만 홍명보 최강희 때를 굳이 넣을 필요까지도 없을 정도로 정점에서의 플레이는 괜찮았다.][* 박주영의 국가대표 전성기라 할 수 있는 08~12 정도의 사이에서 한국인 스트라이커들 중에서 이런 플레이가 박주영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국가대표, 최소한 아시아 정상급들 사이에서 이런 플레이가 안정적으로 가능했던 것은 박주영뿐인 것은 맞다.] 선수 커리어 내내 국대에서 박주영은 항상 원톱 고정이었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그 시기에는 박주영을 원톱 자리에서 밀어낼 정도로 박주영보다 잘하던 원톱이 한국에서 없었다는 얘기도 된다.''' 박주영의 원톱 자리에서 유일한 경쟁자라 할 만한 선수는 이동국과 김신욱밖에 없었는데, 김신욱은 좁은 전술폭과 키에 비해 포스트 플레이를 못해서 감독들이 선호하는 선수가 아니었고, 이동국은 전술폭의 문제와 멘탈, [[유리몸]]의 문제가 겹쳤다.[* 이동국 항목에도 있지만 K리그에서의 능력치를 그대로 가지고 가면 국대에서도 붙박이 주전이지만 06년 무릎부상으로 인한 월드컵 낙마 이후 국대만 가면 본인 스스로가 조급해져 본실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는데다 유망주 시절 지나친 혹사로 스피드도 빠르지 않다. 또한 30대 이후에도 국가대표에서 뭔가 풀릴 만할 때도 자꾸 잔부상이 생기면서 탄력을 받지 못했다.] 다만 이러한 능력들이 유럽 최상위 티어 무대에서 먹힐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유럽 무대의 2티어 정도라고 볼 수 있는 프랑스 리그[* 박주영이 모나코에서 뛰던 당시에는 파리생제르망에 중동의 거대 자본이 들어오기 전이었다.] 정도까지는 충분히 한 시즌을 믿고 맡길 만한 스트라이커로 활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의 1티어 리그인 EPL, 그것도 상위권인 아스날 정도의 팀에서 박주영이 가진 장점은 상대적으로 평범 내지는 그 이하가 될 수밖에 없었고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한 시즌을 맡기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당시 아스날에 공격수 자리에는 ---드디어--- '''부상 없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하던 [[로빈 반 페르시]]'''가 버티고 있었다.[* 애초에 부상만 아니라면 진작에 정상급 공격수로 활약할 것이라고 평가받던 반 페르시였는데 그 로빈 반 페르시가 정말로 부상없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진짜 클래스를 발휘하기 시작하자 당시 아스널의 그 어떤 공격수도 반 페르시를 대체할 수 없었다.] 결국 박주영은 영입되자마자 2옵션, 3옵션을 놓고 경쟁하는 처지로 내몰리게 되고 끝내는 후보 경쟁에서도 탈락하여 많지 않은 나이에 전성기가 끝나버리고 만다.[* 당시 아르센 뱅거 감독이 박주영을 언급했을 시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는 있으나 플레이에 자신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하다못해 후반기부터 미야이치처럼 볼턴등 하위권 팀에 임대라도 갔었더라면 다른 결과가 있었지 않았나 싶다.][* 이뿐 아니라 아스널의 코치진들도 박주영이 감독과 코치의 지시 자체는 충실히 이행하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결국 결과적으로 실력이 없는 선수는 아니나 아스널에서 뛰기에는 부족했다는게 중론.....][* 사실 중소리그나 빅리그 중하위권 팀에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다가 빅리그 우승권팀에서는 주전경쟁에서 밀려 그저그런 선수로 분류당하는 경우는 흔하기는 하다......] 워낙 기복이 심했고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는 기간도 짧았기에 박주영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지만 청소년 대표 때부터 탑급 스트라이커이자 인기스타로 데뷔했고 대한민국의 축구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공격수라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그의 선수 생활이 황혼기에 접어든 2020년대에 와서도 박주영이라는 이름 석 자는 축구팬들 사이에서 잊을만 하면 계속 언급되고 있다. 2014년을 마지막으로 박주영의 국가대표 커리어가 사실상 끝난 후 [[황의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국대 스트라이커 계보가 끊겼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 사이에 수많은 스트라이커들이 대표팀을 거쳐갔지만 그 누구도 전성기의 박주영과 같은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동국이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부상으로 아시안컵에서 낙마했고, 이정협도 잠깐 좋았지만 이후에는 오르락내리락 했고, 김신욱은 활용 문제 때문에 국가대표팀과 잘 맞지 않았으며 이근호, 지동원 등도 소속팀에서의 포지션상 혹은 부상 등으로 좀 그랬다. 그 외의 다른 선수들은 사실 뭐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그리고 황의조 역시 [[벤투호]]의 새로운 원톱으로서 수많은 득점을 만들어냈으나 2019 아시안컵과 2022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는 등 임팩트 면에선 아직 박주영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물론 이건 황의조가 혹사를 심하게 당한 탓도 크다. 황의조는 2021년 도쿄 올림픽을 기점으로 엄청난 혹사를 당해 폼이 급격하게 떨어져 클럽과 대표팀 모두 부진했고 발목 부상과 햄스트링 부상을 입기도 했다. 월드컵 본선 출전경험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큰 경기에서 활약한다면 이러한 평가를 반전시킬 수 있었겠지만, 생애 최초로 출전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며 최종예선에서의 하락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조별리그 첫경기 우루과이전 빅 찬스미스 이후 주로 후반 교체선수로만 출전했다. 2023년 기준 만 30세의 나이를 생각해볼 때 다음 월드컵 출전 가능성이 없는건 아니지만 전성기는 지난 시점일 가능성이 높다.][* 박주영이 국대에서 임팩트가 없다는 글이 있었지만 이건 틀린말에 가깝다.이미 국대 데뷔전 우즈벡전에서 0-1로 패배할 시합을 추가시간에 극적으로 동점골을 넣으면서 화려하게 데뷔했고 잠시 슬럼프에 빠졌다가도 08년 동아시아컵 중국전 2골부터 다시 이미지를 확실하게 가저간게 박주영이다. 단지 폼이 가장 좋았을때 여러가지 이유로 국대도 본인 자신도 한번에 폼이 내려간게 아쉬울 따름이다.] 박주영 얘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황의조가 못해서라기보다 국대급 무대에서는 한 방 펀치력이 부족한 건 박주영도 마찬가지고 사실 청대 때부터 워낙 스타였기 때문에 미디어 노출이 그만큼 오래됐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